느리게 읽기/시 225

언덕 너머

너랑 나랑은 저기 언덕 너머로 가자. 노을이 저무는 황홀한 언덕 너머로 가자. 나는 더 이상 흰색이 보기 싫어 검은색도 보기 싫어 너랑 둘이서 빛 잘 드는 언덕 너머로 가자. 너는 더 이상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 웃음소리도 듣기 싫어 나랑 손잡고 노랫소리 들리는 언덕 너머로 가자. 너랑 나랑은 저기 언덕 너머로 가자. 세상은 버리고 저기 언덕 너머로 가자. from : https://www.instagram.com/p/B-LYK_rnTFI/?utm_source=ig_web_copy_link

도마뱀

하늘은 맑고 높다던데 서울 한복판에선 얼마 전 내 친구 도마뱀이 전화했다. 울먹이면서. 수년간 길러온 자신의 꼬리가 마음껏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매일 잘려나간다고. 그게 가여워 나는 새 우리로 가라고 너 거기서 괜히 피 흘리지 말고 다른 우리로 떠나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더 이상 철창은 싫다고 어차피 떠나봐야 철창 안이라고 싫다고 울다가 전화를 끊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걸까. 무엇을 오해했던 걸까. 하늘은 맑고 높다던데 서울 한복판에선 유리 판때기로 둘러싸인 철제 우리만이 높을 뿐이다. from : https://www.instagram.com/p/B-Qfaq-H3tF/?utm_source=ig_web_copy_link

가자

가자 잠옷 입고 가자 여기는 정류장 여기는 지나쳐 가는 곳 우린 갈 곳 없는 광대들 가자 잠옷 입고 가자 어디로 저기로 어디로 종착역으로 가자 우린 꿈을 잃은 꼬마 유령 가자 잠옷 입고 가자 여기는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린 갈 길 잃은 미아들 가자 잠옷 입고 가자 어디로 어디든 어디든 이 곳 아닌 곳으로 우린 모든 게 싫은 부랑아들 가자 잠옷 입고 가자 가자 꼬리 물고 가자 가자 잠옷 입고 가자 from : https://www.instagram.com/p/COEaxkRHPJq/?utm_source=ig_web_copy_link

몰라서

내가 너를 사랑할 때면 나는 왜 이리 슬픈건지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를 사랑하는 단 하나 바라지만 너의 진심을 몰라 사랑 점점 뜨거워지나 사랑 아닌 집착 같아. 너는 나를 사랑하고 나는 너를 사랑하는 단 하나 바라지만 너의 마음을 몰라 사랑하는 너를 볼 때면 나는 왜 이리 슬픈건지 from : https://www.instagram.com/p/CAUOgtoH6JJ/?utm_source=ig_web_copy_link

노란 아이

황혼이 깔린 시간 학교 운동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다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앉아있다. 쨍쨍한 햇빛 아래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떠나가고 무거운 책가방을 지고 땅바닥을 유심히 살펴가는 한 아이가 지나간다. 그 아이가 나를 한 번 쳐다보고 참새처럼 총총 걸어간다. 그 아이가 나를 또 다시 쳐다보고 모래알을 차며 걸어간다. 작은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내게로 춤추듯 다가온다. 그 아이가 보이지 않아 모래 바람을 타고 사라진 걸까. 그 아이가 사라진 자리엔 쓸데없이 커진 두 발만이 단지 노랗게 보일 뿐이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언가 달라질지 의문스럽다. 어느새 노란 밤이 하늘을 뒤덮었다. from : https://www.instagram.com/p/B92zaOjnb4O/?utm_s..

길을 내줘 나를 위한 갈 길을 모르니 나는 어디로 가 나 너에게 바로 닿을 수 있을까 여긴 한치 앞 모르는 네모로 갇힌 미로 속 엉킨 실타래 조차 없 어서 갈 길을 모르네 나는 가고 싶어 네게 한 번만 알려줘 내게 길을 내줘 나를 위한 내게 내줘 너를 향한 나 외에는 알지 못할 나만이 아는 그 길을. from : https://www.instagram.com/p/COCLlgMnOz1/?utm_source=ig_web_copy_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