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시 225

고백

시작을 하기도 전에 끝을 생각함은 분명 시작을 더디게 하는 것이겠죠. 그러나 그대여 시작을 주저한 것은 그대 탓이 아닙니다. 그대 향한 내 사랑이 작은 탓도 아닙니다. 그저 나란 사람이 그 끝을 책임질 만큼 강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러니 그대여 오해하지 말아요. 슬퍼하지 말아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from : https://www.instagram.com/p/B9n5KJlnxb2/?utm_source=ig_web_copy_link

겨울잠

매서운 계절에 추위를 타 포근한 땅 한 칸 찾는다. 새하얀 햇볕 쬔 눈밭 아래 촉촉한 흙 덕지덕지 붙은 나무 밑동 호적한 그 아래 땅 짐승 세 놓은 그 자리에 눈치 없이 비집고 들어가 엉덩이 붙여 자리 잡는다. 낡은 몸뚱이 한껏 웅크린다. 한 줌 마음 옆에 가지런히 땅에 귀 대고 잠을 청한다. 이 겨울 동안 아무 일 없길. from : https://www.instagram.com/p/CLDnUF8ndxs/?utm_source=ig_web_copy_link

객(客)

검은 차창보다 깊게 내려앉은 어둠 속에 아파트의 불빛 들은 아무 관심 주지않고 가만 가라앉아 있다. 낯익은 길 돌아들어 먼저 눈에 들어오는 6열 12번째 검은 칸. 호젓한 아파트 입구 쓸쓸한 빛 드리우고 버튼을 꾹꾹 누르고 고독한 엘리 베이터 위로 어둑한 그집앞 적막한 빛 깜빡이고 버튼을 꾹꾹 누르고 적적한 그집 현관에 외로운 불빛 비추고 창문 밖보다 캄캄한 어둠 속 사라져간다. from : https://www.instagram.com/p/B_1RHxZnv2Y/?utm_source=ig_web_copy_link

풍화

바람을 맞으면 등을 돌리고 비가 떨어지면 몸을 숨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쑤시더라. 아마도 누군가 지켜보는 사람 있어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팼나 보다. 몸을 가눌 때마다 쑤셔오는 기억에 길을 걸을 때마다 숙여지는 머리. 이젠 바람 맞아갈 때 고개 돌릴 일 없이 이젠 비가 떨어질 때 숨어 버릴 일 없이 마지막 한 줌의 뜨거움 불태워 온몸으로 풍화하며 살아가련다. from : https://www.instagram.com/p/B--8mAXHwKt/?utm_source=ig_web_copy_link

낙화

벼랑 끝에서 내려본 땅바닥은 너무 좁은 곳이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시린 바람이 몸을 뒤로 밀어낸다. 까치발 들고 아래를 내려 본다. 차갑게 쌓인 눈더미가 두 눈을 따갑게 찔렀다. 아찔하다. 주춤하는 걸음에 후두둑 야생화 한송이가 뿔뿔이 아련히 흩어진다. 멀어지는 풍경에 가까워지는 땅바닥 가련한 야생화 꽃잎이 빨갛게 흰 눈 위에 흩뿌려졌다. from : https://www.instagram.com/p/B-I4T4DHHhy/?utm_source=ig_web_copy_link

영화

있잖아. 너가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은 정말 영화같이 아름다웠어. 따사로운 햇살이 찬연히 네 얼굴을 비추고 싱그러운 봄바람이 산뜻히 네 머리를 살랑였지. 그래서였을까 나는 결국 너에게 고백을 했고 우린 영화같이 아름다운 시간들을 함께 보냈지. 그래서였을까 나는 점점 이 영화가 끝이 날까 봐 두려워졌어. 어떤 결말이 될지도. 그런데 결말은 급작스럽게 가장 허무하게 가장 슬프게 있잖아. 나는 아직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나 봐. from : https://www.instagram.com/p/B95bPvgHAjT/?utm_source=ig_web_copy_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