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시 225

내쉬는 한 번의 숨에 담긴 건 아픔인가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다치게 할 맘 없었고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아프게 할 맘 없었어요.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내몸 내연기관 아닌데 내숨 무겁지도 않은데 들이쉬는 한 번의 숨에 담긴 건 무엇인가요. 내가 당신을 마주보고 당신이 나를 마주보면 우리 무엇을 나누나요. 우리 나누면 아픔인가요. from : https://www.instagram.com/p/CNZMIKUng52/?utm_source=ig_web_copy_link

조우

내 앞에 선 낯선 사람아. 왜 네게서 내가 보이나. 닮은 거 하나 없는데 왜 연민이 드는 거냐. 왜 그토록 슬픈 눈인거냐. 왜 인상을 구기고 있느냐. 봐라. 웃고 있지 않느냐. 너도 같이 웃어보자. 제발. 부탁이다. 그 구김을 환하게 펴라. 나는 그걸 보는 게 싫다. 죽도록 보기 싫다. 오죽하면 이렇게 간절히 부탁하고 있겠느냐.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무엇을 하길 바라느냐. 내가 들을 수 있게 크게 얘기해다오. 내가 도울 수 있게 내게 기대다오. from : https://www.instagram.com/p/CA4QU9-Hgqj/?utm_source=ig_web_copy_link

석화

아아, 나는 정말로 하찮구나. 돌 하나 씹어먹지 못하는 나는 소용이 없구나. 바라건대 간절히 바라건대 누가 나 대신 이 목 타는 갈증을 채워주어라. 아아, 나는 바라는 게 많다. 돌가루 잘근잘근 머금은 나는 갈증이 난다. 바라건대 간절히 바라건대 누가 나 대신 이 엿같은 세상을 바꿔주어라. 아아, 나는 생각지 않는다. 돌같은 내 일신의 안녕 나는 하찮을 뿐이다. 아아, 바라건대 바라건대 먼 훗날 반드시 내게로 반드시 와주어라. 아아, 바라건대 바라건대 두 볼 물 가득 머금어라. 두 볼 빵빵하게 가득. 아아, 바라건대 바라건대 나 대신 행복해주어라. 반드시 행복해주어라. from : https://www.instagram.com/p/CBjecHZHnFr/?utm_source=ig_web_copy_link

거울

거울 속에 늘 보던 그 모습이 있다. 나라는 사람의 모습인가 싶다. 거울 속에는 그의 형상이 남아있다. 내 근육과 관절이 기억한 대로다. 거울 속에는 그의 표정이 남아있다. 내 눈동자가 기억하는 그대로다. 거울 속의 그 남자는 정말 나인가. 아니면 감각이 만들어낸 환상인가. 거울 속의 남자와 함께 생각을 해 본다. 무엇이 무엇인지 점점 더 모르겠다. 내가 보는 내가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느끼는 내가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도대체 나라는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 내가 나인 것일까. 거울 속의 남자가 나인 것일까. 나와 거울 속의 남자가 다른 게 무엇일까. 거울 속의 남자가 거울에 갇힌 것일까. 거울을 보는 내가 거울에 갇힌 것일까.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 도대..

백야(白野)

사박사박 하얀 눈 위로 때묻은 발자국 밟힌다. 흩뿌리는 눈발이 위에 매섭게 아래로 박힌다. 허탈한 발걸음 멈춰서 하얀 평원을 내려본다. 앞으로 아무것도 없다. 뒤로는 꾸질한 발자국 흰 눈이 내리고 내린다. 망연한 발걸음 그 위로 하나둘 하나둘 덮힌다. 모두 하얗게 될 때까지 사각이 덮힌 백야 위에. 여기에 아무것도 없다. from : https://www.instagram.com/p/CKDcdnyn14s/?utm_source=ig_web_copy_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