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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데니스 뇌르마르크 & 아네르스 포그 옌센 / 자음과 모음

neulvo 2024. 1. 5. 18:13

러셀은 이를 과도한 노동의 탓으로 돌렸다. 사람들이 여가 시간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게 된 것은 일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러셀은 우리의 일이 줄어들면 탐구심이 더 많아지고 공부를 원하게 될 뿐 아니라, 생계의 필요에 얽매이지 않아서 공부가 혁신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의 노동에 대해 살펴보면 한 가지 의미심장한 경향이 되풀이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절약할 방법을 알아낼 때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시간을 사용할 새로운 방식을 알아낸다는 것이다.

예전엔 아주 약간의 교육이나 훈련만으로 충분했던 일자리들이 갑자기 대학에서 전공해야 하는 학문이 되어, 학사나 석사 학위가 필요해졌다.

현대에서 생겨난 직종에 종사하는 상당수는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론은, 우리 중 많은 이가 일에 쓰는 시간의 양을 시종일관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일하는지 (혹은 일하지 않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여가와 일을 뒤섞어 아주 오랜 시간 빈둥거리거나 아무도 모르게 책상 위에 쓰러져 죽는다.

사실 직장에서의 극단적 지루함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아주 흔한 일로, 이런 현상은 모든 게 지겨운 '보어아웃 증후군'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보기엔 너무 잔인할 정도로 무의미한 노동이 분명 정신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묻습니다. '난 정말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걸까? 내가 평생하고 싶은 일이 이건가?'라고요.

일하지 않으면 뭘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 시간 노동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전혀 힘들지는 않더라도 잔뜩 스트레스 주는 업무,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업무, 누가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업무를 포괄할 '텅 빈 노동'이라는 개념의 대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짜 노동'이라는 적당한 용어를 찾아냈다.

그래서 어떤 제안이 합리적이라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그것이 이성적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한때 합리적이었던 것이 이제는 비합리적인 것이 됐다. 관료제는 해결책보다는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더 큰, 통제를 벗어난 합리성의 유일한 사례가 결코 아니다.

우리는 합리성의 다른 사례를 뒤에서 더 살펴볼 것이다. 이 모든 것들에 공통된 한 가지는 '좋은 의도'다. 악의적이거나 무의미한 노동을 낳으려 능동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합리성과 다른 수많은 합리성이 세상에서 가짜 노동을 제거하기보다 더 많이 발생시킨다는 의심을 우리는 품고 있다.

우리가 언제나 문제를 파악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테크닉이 우리를 특정 방향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해하도록 제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메일은 우리를 언제나 연락이 가능한 존재로 만들었다. 테크놀러지는 우리가 더 많은 해답을 추구하도록 격려한다.

한편 테크놀러지는 스스로 영원히 계속되려는 성향이 있다. 예를 들어 학생의 독해 능력이 어떤 검사로 측정될 수 있다는 관념은 학생이 독해 능력을 검사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면 이런 검사로 측정된 학생의 성적에 따라 교사의 위신이 판단되고 그래서 교사는 수업을 그 평가 기준에 맞춘다. 그렇게 검사 테크놀러지 내에서 검사의 합리성은 획일성을 창출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지금은 시시각각 이메일함을 확인하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었으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었다. 가속화에는 역설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를 해방시켜주리라 기대했던 기술은 결국 더 많은 일을 만들어냈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자유롭게 만들고 더 큰 노력, 에너지, 관심을 서로의 관계에 쏟았어야 했다.

허위 형성 동안에는 순수하고 독특한 형식을 창조하고 자기 인식을 개발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짜 노동의 시대에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노당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게 불가능하거나, 뭔가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고 조치를 취하는 데 필요한 '자기 인식' 개발이 불가능한 방식으로 노동이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안다는 사실을 모르는'이라는 문구인데, 즉 이 경우가 주로 가짜 노동을 만든다. 단순히 직면하기 불편하고 곤란해서 현실을 억누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이질적이면서도 친숙한 현실이다. 우리가 일 속에서 자신을 인지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오랫동안 해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로부터 이질적인 것이 되었다.

파킨슨의 법칙은 영국의 해양사학자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이 발견하고 발전시켰다. 그는 1955년 이코노미스트에 자기 생각을 요약해 발표했다. 그 논문에 실린 일련의 발상과 가설에는 후대에 길이 남을, 그의 이름이 붙여진 개념이 포함돼 있다. "일은 그것의 완수에 허용된 시간을 채우도록 늘어난다."

매케빗이 책 서문에 썼듯 "현대 사회에서는 발표된 것이 실질 내용보다 중요하다." 허위 프로젝트는 '바빠 보이는' 게 핵심이다.

이전에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지위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열심히 일하는 정도가 사회적 지위의 척도가 되었다.

지옥 같은 직장 생활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돼 있고, 가짜 노동은 포장 재료 가운데 하나다. 좋은 의도와 합리적 사고의 결과이기에 가짜 노동을 근절하기가 그렇게 힘든 것이다.

스웨덴의 가장 성공적인 사업가 중 하나인 얀 발란데르는 덜 완곡하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기업이란 새 스타일이나 청바지 상표를 찾아내는 십대 청소년처럼 유행에 민감해서 ... 들판에서 풀을 뜯는 양 떼 같다. 저쪽 풀색이 더 짙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우르르 몰려가고 나머지도 모두 달려든다."

조직들은 상상력이 부족해 서로 베끼기에 급급하다. 사회적 책임 정책, 리더십 파이프라인, SNS 전략 등 아마도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질까 봐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루이세가 앞에서 설명한 것은 가짜 노동의 더욱 심각한 측면이다. 그저 의미없는 시간 낭비가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엔 방침, 정책 같은 것을 본인과 세상 사이의 '방어벽'으로 설치한다. 루이세는 더욱더 많은 정책, 전략, 방침을 더하면서 그것들의 도입 과정에 사람들의 관심을 모음으로써 문제 자체를 해결하고 책임지는 데는 소훌해지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눈치챘다. 이 모든 정책과 윤리는 그저 더 많은 가짜 노동을 만들어내고 책임을 회피할 구실을 준다.

"정책을 만들어내는 대신, 우리는 각각의 모든 책임자에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복지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그들의 업무라고 말해야 합니다. 병가 규정과 스트레스 관리 방침 뒤에 숨어서 '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했어' 하고 빈말만 하는 것보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관리직은 규정 준수 능력으로 평가되어선 안 됩니다."

그런 압력에 시달리면서 홍보팁은 자기 업무 과정을 점점 더 많이 기록하고 추적하게 되었다. 그들의 쓸모를 증명할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알베손이 말했다. "우리는 '가짜 세상'에 살고 있어요. 고의적인 거짓말만이 문제가 아니에요. 노동의 허위적 본성을 포함한 세계의 허위적 본성 자체가 문제죠. 이때 필요한 건 진정성과 지적 명확성이죠. 우리는 인간의 삶에서 의미와 자율성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점점 줄어들었죠. 컨설팅, 코칭, 브랜딩, 홍보. 이런 것들이 이 논리로 끌려들어갔어요. 모든 게 문서로 만들어져야 하고 그 문서는 좋아 보여야 하죠. 해결책이 사실상 문제를 일으키고요. 예를 들어 어느 대학이 당면한 진짜 문제를 다루는 대신 핵심 가치에 초점을 맞추면 초점이 교육에서 멀어지는 것 같이요. 해결책들은 우리를 허위 유형의 활동으로 이끕니다." 우리가 5장에서 낸 결론을 알베손은 다른 방식으로 설명했다.

왜 모두를 포함시켜야 하냐고? 긍정적 합리성의 핵심 원칙은 모두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누구도 '아니요' 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두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 습관은 널리 퍼져 있다.

메테가 계속 얘기했다. "문제는 우리가 통찰력을 잃고 애초에 누가 우리를 대신해 이 모든 일을 만들어냈는지, 이유가 뭐였는지 잊었다는 거죠. 그냥 지나가는 유행일 때가 많아요. 어떤 때는 이런저런 근거 마련이나 요청 때문일 수도 있죠. 수많은 회의 때문일 수도 있어요. 모두가 '공동 창조'에 대해 떠들고 난 다음, 사무실로 몰려가서 우리가 어떻게 '공동 찾오'에 접근했는지 그리고 어떤 전략을 취했는지 보고서를 작성하죠."

그럼에도 회의가 계속되는 한 가지 이유는 아마도 회의를 옹호하고 조언하는 모든 종류의 서적들이 잘못된 가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가 본성적으로 가능한 한 가장 효율적이기를 원한다는 가정 말이다.

"피곤할 때도 원기가 있을 때만큼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으리라는 건 환상입니다. 다들 잘 알죠.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 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2시간 일하는 대신 8시간을 일하면 4배로 많은 일을 할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늘 효율적일 수는 없다는 게 단순한 진실입니다."

하지만 경영 컨설턴트 세계에서 살아온 제대로 된 직업인이라면, 이메일 하나라도 4시간 이내 답장하지 않고 고객이나 동료 전화를 받지 않거나 최대한 빨리 회신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맥과 직업 세계 전체가 산산이 부서질 것으로 생각한다. 레슬리 퍼로의 연구에 의하면 이런 공포는 전혀 근거가 없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이 배운 것은 컨설턴트들이 일을 더 즐기고 내부 소통이 향상되었으며 방해받지 않느 시간이 그들에게 새로운 기능을 익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즉, 고객에게 더 좋은 결과를 생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모두가 그렇게 바쁘고 끊임없이 세상과 접속해야 한다는 관념은 착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소통하느라 모든 시간 써버리기를 멈추고 좀 제대로 일하는 것이다.

직원들이 자유 시간을 좀 더 가지게 된 꼴을 못 보는 회사들이라니.

노동자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선사할 필요가 있어요. 삶에 의미가 있어야죠. 직장 생활 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 있어서요.

사람들은 효율성으로 인해 소요된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그 생산물의 가치가 낮아진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생산물의 가치는 거기에 투입된 시간에 의해 정의된다고 애덤 스미스가 우리에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생산물의 가치가 아니라 시간만큼 임금을 받는다는 관념은 우리 안에 깊숙이 박혀 있다. 그 결과, 일이 실제보다 오래 걸린다고 말해야 유리해지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세 가지를 다 합치자면, 현대 기업에서 살아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높은 성과나 계량 가능한 가치 생산에 집중하는 게 아니고요, 끊임없이 적당한 자기 이미지를 찾아내고 만들어나가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 시간을 다 쓰게 되죠."

불신의 분위기에서는 가짜 보증이 합리적인 해답이 될 수 있다. 알 방법이 없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을 때, 모든 일이 잘될 거라는, 위험한 일은 없다는 억측을 만들어내서 그것에 대한 긴 보고서를 쓰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가짜 노동과 마찬가지로, 지시하는 자와 수행하는 자 사이의 암묵적 동의하에 이뤄진다.

통제로는 신뢰가 쌓일 수 없다. 내가 사람들을 믿지 않으면 사람들도 믿음직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것이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는 비극이다.

서로에 대한 불신에는 대가가 따른다. 가짜 노동의 쳇바퀴에서 무한한 시간을 보내는 형벌 말이다.

가짜 노동을 깨닫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너무 많은 사람이 '소외된 정상성'의 거울방 안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가짜 노동은 끊임없이 다시 자기 위에서 반영되며 더욱 많은 가짜 노동, 허위 프로젝트, 허위 지위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차츰 소외된 것이 규범이 된다.

어느 수준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계속 바쁘고자 하는 어쩔 수 없는 욕구 때문에 그 인식이 억눌린다. 게다가 가짜 노동이 바쁠 기회를 풍부하게 제공하기에 개인은 이 충격적인 진실로부터 보호될 뿐 아니라, 무의미한 일을 계속 지속한다.

그저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자는 것이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것이 '계몽'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사람들이 멍청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반대로, 우리가 멍청한 이유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회피하고 편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편견에는 상식으로 맞서야 할 필요가 있다. 칸트는 "사페레 아우데", 즉 '알고자 하는 용기'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철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원칙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제목] : 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저자] : 데니스 뇌르마르크 & 아네르스 포그 옌센 [분야] : 인문교양 [출판사] : 자음과모음 [발행일] : 2022-08-08 [정가] : 1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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