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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데니스 뇌르마르크 & 아네르스 포그 옌센 / 자음과 모음

neulvo 2024. 1. 5. 19:26

가짜 노동이란 전혀 힘들지는 않더라도 잔뜩 스트레스 주는 업무,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업무, 누가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업무를 포괄한 '텅 빈 노동'을 가리킨다.

즉, 의미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주로 직장 내에서의 노동을 얘기하고 있다.

가짜 노동에 대해 상술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또는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지인 또한 책을 읽지 않아도 제목만 보고도 그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라고 얘기했었다.

저자는 직장 내에서 관리 및 합리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짜 노동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가짜 노동을 하는 우리는 노동 안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공허하게 바쁘다. 가짜 노동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또한 문제다.

가짜 노동이 왜 필요해졌을까 생각해보면 결국 시간 당으로 임금을 책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질적인 업무를 하지 않을 때에도 모종의 이유로 업무를 주어야만 했던 것이다. 모종의 이유에는 직원이 놀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이라도 프로그레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해서도 있을 것이다. 상황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우리는 불안을 해소할 방법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과시성 프로젝트 또한 원인이다.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긴 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중요성이 과장되었고 실제로는 어떠한 유익도 생산하지 않는 프로젝트들이 명목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 프로젝트라 했지만 과시성 행동이라고 정정해도 좋을 듯하다. 불필요한 회의나 제안 등 또한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행동들은 대내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만 존재할 뿐이고 이 또한 강박의 산물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의 문제이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믿지 못하고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는 관리와 행정이 들어서게 되었다. 관리와 행정은 물론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차지하는 규모가 비대해진 것이다. 빼곡해진 기록지와 스프레드 시트, 그리고 그에 기반한 평가는 우리를 서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서로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할 일이 끝났으면 집에 가기, 회의를 짧게 하기, 시간을 재지 않기, 불완전함을 감수하기 등의 실질적인 전략들을 소개하며 기본 소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기본 소득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책임과 신뢰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책임 회피에 대한 얘기를 지인들과 짧게 나눈 적이 있었다. 기업이나 기관에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여도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나 모습을 요즘 우리는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지인 중 한 명은 책임 회피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나도 그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책임 회피가 가능한 시스템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잘못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고쳐야 될 것은 불필요하게 복잡해진, 책임이 분산되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시스템도 결국 누군가가 개발한 것이고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다.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근무 시간에 대한 규정을 바꾼다든가 업무 체계에 변화를 준다든가 하는 노력들을 근래에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가짜 노동에 반발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끼고 우리도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이 꼭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단순했던 일들이 복잡해진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시스템을 고집하더라도 그것이 보다 단순해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복잡해진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책임지기 싫어하고 우리는 눈치 보기에 바쁘다.

책임과 신뢰를 회복할 방법을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관계를 회복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의미는 일정 부분 관계에 기인한다. 관계가 부재한 곳에 의미 또한 부재한다. 시간과 분량을 채우기 위한 일, 아무도 보지 않는 발표물을 만드는 일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지 못한다. 노동이 안정적인 삶도 의미도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지속해야 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변화해야 하고 가짜 노동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제목] : 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저자] : 데니스 뇌르마르크 & 아네르스 포그 옌센 [분야] : 인문교양 [출판사] : 자음과모음 [발행일] : 2022-08-08 [정가] : 1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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