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생각하기/늘보 철학

[늘보 철학] 7. 선택

neulvo 2023. 12. 25. 00:04

최근에 디즈니플러스에서 what if 시즌 2를 개시하였다. 하루에 한편씩 에피소드가 공개되어 보고 있는데 볼 때마다 선택과 분기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what if...?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았을까?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별 생각 없이 잘 살다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로 다른 선택이 가능했던 걸까?

인생이란 게 여러 갈래로 뻗쳐나갈 수 있는 걸까?

의문이 든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른 가능성이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살면서 우리는 매순간 여러 선택을 취한다.

그 선택이란 것은 강요받은 것일 수도 의지로 결정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은 순간이어도 그에 이르는 과정이 있다.

 

아무런 배경이나 기호 없이 선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점심에 햄버거를 먹은 것도 뜬금없는 일이 아니다.

나름의 합리성과 사전 과정이 있다.

내가 오늘 점심에 햄버거 말고 다른 메뉴를 먹었을 수도 있었을까?

나는 그 가능성을 그렇게 믿지 않는다.

어떠한 가능성을 확률로 표시하는 것도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결국 선택이 한가지인데 다른 확률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물론 내가 어떤 문제집을 푼다면 그 문제집에 대한 정답률이 80%라고 얘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내린 또는 내가 내릴 선택에 대해서 확률을 말할 수 있을까?

문제집 전체의 정답률이 80%라고 하여도 각 문제에 대해 정답을 맞출 수 있을지 못 맞출지 아니면 일부러 안 맞출지는 문제를 맞딱드렸을 때의 나의 상황과 나에 대해 전부 이해한다면 확실하게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내릴 선택에 대해서도 선택을 내릴 당시의 상황과 나의 성향, 기호 등을 모두 안다면 무엇을 택할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관을 결정론적 사고관이라고 한다.

결정론은 과거의 원인이 미래의 결과가 되며, 이 세상의 모든 사건은 이미 전해진 곳에서 정해진 때에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참고 : https://ko.wikipedia.org/wiki/결정론

 

나는 나의 선택에 포커스를 맞추었지만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이 정해져있다는 것이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라플라스는 "우주의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안다면 우주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도 주장하였다.

나는 개인의 선택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행동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않았는가?

누군가의 행동 양식을 잘만 관찰한다면 그의 다음 행동까지도 예측해볼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예측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간다. 조금의 정보만으로도 다음 행동을 알 수 있는데 모든 정보를 안다면 어떻겠는가? 당연히 그의 모든 행동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정보를 안다는 것이 현재 불가능할 뿐이다.

 

자,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서 평행우주라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모든 것이 정해져 있고 모든 선택이 예측 가능한데 다른 가능성과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적어도 결정론적 사고관 안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우주에는 하나의 우주만이 존재한다고 믿고 하나의 가능성만이 있다고 믿는다.

 

다른 가능성은 deceptive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deceptive는 기만적인, 현혹하는 등의 뜻을 지닌 단어인데 여기에 쓰기 적절한 단어라 생각하여 사용하였다.)

다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재밌지만 심할 경우 우리를 삶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정작 중요한 일을 처리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현실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다른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만약 다른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왜 또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다른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능성과 우주가 파생된다는 것인데 어떻게 끝이 없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지 또 왜 그것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만약에 특정한 한계가 있어서 그 한계를 넘지 못하게 한다고 하여도 그 기준을 어떻게 세울 수 있는지 과거가 부정된다면 연속성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는지 이해가 잘 안된다. 과거가 망각되는 것과 관련이 있나 싶다가도 가능성과 망각을 연결시키기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를 망각하기에 잘못된 선택을 반복할 수도 있고 엉뚱한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다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묘하다. 결국 가능성은 하나이다. 전부라는 게 그러한 엉뚱함까지 포함하는 것이라면 자뭇 과한 것 같긴 해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생각하다 보니 소재로서는 재밌는 요소가 많네. 언젠가 써먹어야 겠다.

 

잠깐 샛길에 빠졌지만 다시 돌아오자면 다른 가능성의 존재 이유와 존재 방법을 납득하지 못하겠다.

그 모든 가능성을 감당해야 할 이유를 아직 잘 모르겠다.

결국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르기에 또 알 수 없기에 이유가 없다라고도 할 수 있겠고 이유보다 존재가 앞선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만약 하나의 가능성이 아닌 여러 개의 가능성이나 우주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하나로는 충분하지 못한 느낌이고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이유를 모르겠고 하나와 여러 개의 차이, 여러 개의 가능성을 뒀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한다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얻는 것이 불분명하다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렇다면 그것이 존재해야 하는 가에 대해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평행 우주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얘기했다. 한계 없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고 한계가 있다고 한다면 소거의 기준이나 연속성의 보존 방식이 어떻게 되는지 전혀 감이 안온다.

 

줄이자면,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면 모든 과정을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우주에는 한 가지 가능성만이 존재한다. 만약 우주가 여러 개이고 그것이 선택에 의해 분기되는 것이라면 답해야 할 의문들이 있고 그 답은 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 평행 우주는 솔직히 재밌는 소재고 나도 잘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납득이 잘 안되고 선택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불안, 후회, 미련 등이 뒤따른다. 앞서 얘기했듯이 가능성은 하나라고 믿는 편이 멘탈에 더 좋은 면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만 가능성이 하나라고 믿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고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어떠한 것이라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하여 평행 우주를 주장하기에는 불확실한 것이 많기에 그전에 답해야 될 것들이 있기에 평행 우주를 믿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주가 하나라면 가능성이 하나라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무엇을 할지도 무엇이 달라지는 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우주가 하나든 여러 개든 어차피 우리가 사는 우주는 하나니까 그 소중함이 달리지지도 않을 테고 가능성이 하나라고 더 무책임하게 살아도 된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책임에 대해 얘기하니까 확실히 그런 면은 있는 것 같다.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가능성은 하나라고 생각하니까 부담감도 덜한 것 같고 스스로의 선택을 더 믿게 되는 것 같다. 멘탈적으로는 이점이 많은 사고 방식이다. 너무 많은 선택에 압도되는 것 보다는 낫다.

 

끝으로 우주에 대한 내 또 다른 생각을 전하자면, 

나는 우주의 모든 것이 겹쳐 있는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현재, 미래 모두 한 상태에 겹쳐있고 시간이 그것을 풀어낸다고 생각한다. 정보들을 공간 상에 배치하고 재생하는 것이 시간의 역할이자 기능이다.


시뮬레이션이나 동영상 세계관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거나 동영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도 물론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정말 궁금한 것은 우주가 무엇인지 왜 존재하는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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