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생각하기/늘보 철학

[늘보 철학] 6. 존중

neulvo 2022. 1. 10. 19:22

'사람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가 나와 마찬가지로 감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사람이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성을 지녔기 때문에 자연이나 끌림의 명령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선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가 이성적 존재이자 자율적 존재이기 때문에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자율적으로 선택한다고 믿는다 하여도

그가 내리는 모든 선택이 자율적인 선택일 수는 없다.

그는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그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며 생존한다.

어떠한 영향을 얼마만큼 받았는지를

모두 재단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그 선택이 자유롭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인간이 스스로에게 법칙을 부여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영향받지 않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자율적으로 행동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인가?

 

어느 정도로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존중받기 위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이기 때문에 존중받을 수는 없는 것인가?

 

나는 존중에 관한 한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나와 마찬가지의 존재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사람이 존중받아야 할 이유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근거를 의식이라는 감각에서 찾고자 한다.

 

우리는 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타인도 의식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의식하는 지를 우리는 알 수 없다.

 

내가 의식을 지니고 있으니

나와 동질의 형상을 하고

다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타인 또한

비슷한 성질의 의식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 미루어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짐작이 충분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이 나와 비슷하기 때문에

그도 나와 비슷한 성질의 의식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는 있어도 납득하기에는 어딘가 어려워 보인다.

 

누군가의 생김새가 그리고 그가 행동하고 반응하는 것이

나와 비슷하다고 해도

그가 생각하는 것 또한 나와 비슷할까?

 

밖에서 관찰되는 것과

안에서 관찰되는 것을

같은 선상에 놓거나 연결하는 것은

그 경계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 또한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 부분의 연결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경계를 넘어설 만큼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이 나와 마찬가지로

의식하는 존재임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해치는 사람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정말로 타인을 나와 동등하게 본다면

우리는 그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의식 또한 감각이라면?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이

뇌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면

의식을 감각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는 없다.

 

보통 사고하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다른 것이라 생각하지만

내 생각에 그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둘 다 뇌의 작용에 의한 것인데

별개의 것, 별개의 작용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물론 활성화되는 영역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 원인이 되는 작용이 같은 곳에서 일어난다면

그 둘을 아예 떨어뜨려 놓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밖에서 관찰되든 안에서 관찰되든 관찰하는 내가 있다.

 

따라서 의식이나 감각이 다른 하나를 포괄한다고 파악하거나

그 둘을 뇌의 작용이라는 상위 범주 아래에서 파악하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그리고 내 생각에 의식의 사고 작용을

육체에서 떨어뜨릴 수 없는 이상

의식 또한 감각의 일종이라고 파악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감각하는 육체에서 독립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것이

다른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의식 또한 감각이고 감각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의식이 감각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면

타인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감각하는 것처럼

타인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의식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모호했던 연결을 보다 분명하게 할 수 있다.

(물론 확신할 순 없다. 직접 느끼는 것과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가 쾌락을 느끼는 대로 타인도 쾌락을 느끼고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대로 타인도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의식하는 대로 타인도 의식하고

우리가 의식을 느끼는 대로 타인도 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같은 방식으로 느끼기 때문에

우리가 같은 방식으로 사고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또한 결국엔 느끼는 것으로 같은 종류의 것이다.)

 

타인을 우리와 같은 존재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감각하는 존재로 말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느끼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렇다. 공감할 수 있다.

 

그가 나와 마찬가지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를 존중하고 그의 감정을 공감하고 그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공감 능력을 기르고 배양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타인으로 보지 말고

그를 존중하고 스스로와 같은 선상에서 그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이 당연해져야 한다.

 

우리는 함께 존재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할 때만이

우리는 소외되지 않고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 ) 이 생각의 발단이 되었던 경험을 블로그 초창기에 수필로 쓴 적이 있어 가져왔다.

 

존중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존중이다. 원래는 비밀이었는데 그건 다음에 얘기하자. 아무튼 존중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은데 사람을 존중해야한다는 명제를 나는 항상 옳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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