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생각하기/늘보 철학

[늘보 철학] 2. 경험

neulvo 2021. 9. 21. 01:24

먼저 원칙으로 내세운 '경험'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경험만이 전부다. 경험 외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형이상학 서설에서

칸트가 이미 얘기한 바이기는 하지만

(뉘앙스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내가 깨달음을 얻고 이에 대해 절감한 것은 다른 경로에서였다.

 

이미 수필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나는 삼수하던 21살 때까지

내가 왜 살아있는지에 대해서

또 내게 주어진 운명이나 목적이 있는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었다.

 

중학생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고민했던 문제였는데

아무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보아도

그 해결이 소원하게만 느껴졌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게 그것에 대해 알 수 있는

어떠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내 삶의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경험한 것이나 경험에서 배운 것뿐인데

삶의 이유라는 문제는

그 범주에서 벗어난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내 삶의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주어진 삶의 이유에 대해서고

나는 당시에 그것의 존재 유무부터 고찰했었다.

 

하지만 '경험'에 대한 깨달음,

'경험하지 않은 것은 알 수 없다.'

라는 깨달음을 얻고 난 후에는

삶의 이유라는 문제를

'미지의 영역'에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더 이상 고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지의 것'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알게 해 줄 어떠한 단서가 필요하며

 

아무 단서 없이 고민만 거듭하는 것은

낭비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삶의 이유라는 '미지의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알기 위해서 필요한 단서를

나는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또,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언젠가 그 단서를 찾으면

알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찾지 못했고 찾는 것도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그 단서를 찾을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미지의 영역'에 그것을 두고 고민을 그쳤다.

 

그에 대해 고민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더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종합하자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경험'한 것뿐이며

그 외의 것은

'경험'하지 않은 것으로서

그것을 '미지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미지의 영역'에 있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어떠한 단서가 필요하며

그 단서는 경험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경험 외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삶의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다시 말하자면, 경험 없이 '미지의 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을 꾀하는 것은 언뜻 가치 있어 보일지 모르나 결국 낭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이유에 대해 자문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경험의 확장 없이 그것을 아는 것은 불가하니까.

 

우리는 고민하는 것만으로는 삶의 이유를 알 수 없음을 인식하고

경험을 쌓고 확장시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스스로가 목적을 설정하고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삶에 대해 궁구하면서도 스스로가 삶을 가치 있게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삶을 깨닫기 위해 꾀해야 하는 것이고 마땅히 해야 할 것이다.

(2021. 11. 14. 추가.)

 

이상이 경험에 대한 그리고 삶의 이유에 대한 나의 철학이다.

물론 내 철학이 칸트와 달리

'삶의 이유에 대해 알 수 없는 이유는 그것에 대해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는

스스로의 깨달음에 기반한 것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논리적 개연성을 잃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리고 사실 꼭 철학이 아니어도

내 생각의 내용을 전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 수필 링크

 

이유와 목적

전에 얼핏 얘기했던 대로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의 목적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어릴 때부터 생각이 참 많았고 고민도 참 많았다. 그리고 그 중 가장 궁금했던 건 내가 왜 살아있을까? 내 삶의

neulvo.tistory.com

 

+) 첨언 1.

혹시나 오해가 생길까 봐 얘기하자면

위에서 배움을 경험과 배움이란 식으로 함께, 또 따로 언급한 것은

배움이 '경험'의 범주에 속하지 않아서 때문이 아니라

의미 전달을 위해 경험과 배움을 사전적 의미에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 첨언 2.

사실 아무리 자의식이 강하다고 해도

자신의 철학을 이렇게

써서 올린다는 건 꽤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기왕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봐야지.

이 끝에 의미 있는 결말이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 첨언 3.

늘보 철학에 올린 글들을

다시 확인해보니

내용이 완전하지 않고

또 그 어조가 조금씩 다르며

글들이 통일성 있게 이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전반적인 수정이 필요해 보이네요.

내용을 추가하고 후에 구조나 짜임새 등을 다시 볼 생각이니

여기 내용들은 초고를 본다는 느낌으로

또 아이디어를 접한다는 느낌으로 봐주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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