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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_로버트 맥키 / 민음인

neulvo 2021. 12. 4. 00:42

제 1부 작가와 이야기라는 예술

서론

원형적인 이야기는 현실의 구체성으로부터 보편적인 인간 경험을 들어 올린 후 그 내부를 개성적이고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담고 있는 표현으로 감싼다. 전형적인 이야기는 그 내용을 협소하고 특수한 문화적 경험으로 제한한 후 낡고 몰개성적인 일반성으로 포장한다.

관객들은 단순히 영리한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의 영화보다 훨씬 더 영리하다.

제 1장 이야기의 문제점들

이야기는 현실로부터 도망쳐 나오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싣고 현실을 찾아 나서는 추진체이며 실존의 무정부적인 상태로부터 질서를 찾아내려는 우리들의 가장 진지한 노력이다.

훌륭한 이야기란 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 즉 세계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말한다.

이야기는 삶에 관한 은유라는 사실을.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은 진실이 아니라 사실일 뿐이다. 진실이란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 그 자체이다.

제 2부 이야기의 구성 요소

제 2장 구조의 스펙트럼

순간에서 영원에 이르기까지, 머릿속의 미소 공간에서 우주 공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등장인물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는 예외 없이 백과사전처럼 다양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대가는 이들 중 다만 몇 순간을 골라내지만 그를 통해 삶 전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구조란 등장인물의 삶의 이야기로부터 선택된 일련의 사건들을 말한다. 이때 삶의 이야기는 삶에 대한 어떤 특정한 관점을 나타내고 어떤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구성된다.

사건이란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결국 등장인물을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이야기적 사건은 등장인물의 삶의 조건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며 이 변화는 가치의 변화라는 형태로 경험되고 표현되며 갈등이라는 과정을 통해 얻어진다.

장면이란, 연속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정한 가치로 채워져 있는 등장인물의 삶의 정황을 갈등을 통해 변화시키는 행동을 말한다. 이때 변화는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가치에 대하여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의 강도를 가진 것이어야 한다. 이상적으로 보자면 모든 장면은 이야기적 사건이다.

그러나 만약에 이 장면의 목적이 단지 해설이라는 기능에만 제한되어 있다면 잘 훈련된 작가는 이 장면을 미련 없이 버리고 해설의 기능은 영화의 다른 부분들에 적절히 안배할 것이다.

어떤 장면이 진정한 사건이 되지 못할 때에는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다.

비트는 행동/반응이라는 행위의 교환을 일컫는다. 비트가 변화를 가지고 반복되는 과정에서 장면이 구성된다.

비트가 모여 장면을 구성하고 여러 개의 장면이 모여 시퀀스를 구성한다.

시퀀스란 일반적으로 두 개에서 다섯 개의 장면들로 구성되며 선행한 어떤 개별적인 장면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만들어낸다.

장이란 절정을 이루는 장면을 향해 집중되어 있는 일련의 시퀀스들이 모여 구성된 극적 단위를 말한다. 이때의 절정을 이루는 장면은 앞서 있던 어떤 시퀀스나 장면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면서 가치들의 주된 반전을 야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야기의 절정 : 이야기는 일련의 장들로 구성된다. 이 일련의 장들은 절대적이고 취소 불가능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마지막 장의 절정 또는 이야기의 절정까지 밀고 올라간다.

플롯은 사건들에 대한 작가의 선택이며 시간 속에 그것들을 직조해 넣는 일을 말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세심하게 사건들을 선정하고 사건이 발생하는 방식을 시간의 경과와 함께 드러내 보여야만 한다.

이야기의 고전적 설계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주로 외부의 저항 세력과 맞서 싸우는 활동적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주인공의 활동은 연속적인 시간을 통해서, 연속적이고 인과적으로 연결되는 허구적 사실성 속에서, 절대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로 마감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속된다. 이러한 불변의 원칙을 나는 아크 플롯이라고 부른다.

미니멀리즘이라는 말이 설명하듯이 이 경우 작가는 고전적인 설계에서 시작하되 아크 플롯의 특징적인 내용들을 축소, 축약시킨다. 나는 이 변형을 미니 플롯이라고 부른다.

안티 플롯은 아크 플롯을 축소한 것이 아니라 뒤집은 것으로서 전통 형식에 대한 반항을 통해 형식적 원리들에 질문을 던지거나 또는 아예 이미 존재하는 형식적 원리를 조롱하고자 한다.

아크 플롯은 닫힌 결말, 즉 이야기 속에서 제기되었던 모든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이루어지고 불러일으켜진 모든 감정들이 충족되는 결말을 갖는다.

반면에 미니 플롯은 종종 그 결말을 열린 상태로 놓아둔다.

그렇다고 해서 열린 결말이라는 것이 이야기를 중간에 뚝 끊어버리고 모든 것을 진행 중인 상태로 놔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겨진 질문들은 반드시 대답 가능한 것이어야 하고, 남겨진 감정은 또한 해소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아크 플롯은 외적 갈등에 중점을 둔다. 인물들 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갈등, 사회 기관들과의 갈등 또는 현실 세계의 물리적 힘들과의 갈등 등이 더욱 강조된다.

그와 반대로 미니 플롯에서는 주인공이 가족, 사회, 환경 등 외부 조건들과 심각한 외적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하더라도 주인공 내부의 생각과 감정,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내적 갈등이 더욱 강조된다.

단일 주인공 대 다수의 주인공

아크 플롯의 단일 주인공은 계속해서 고조되는 긴장과 변화 속에서 활동적이고 역동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해 나간다. 미니 플롯의 주인공은 활동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수동적이다. 이러한 수동성은 주인공에게 강력한 내적 갈등을 부여하거나 주인공의 주변에 극적인 사건을 많이 배치함으로써 보상된다.

고다르는 그의 미학 이론에서 영화에는 반드시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어야 하지만 반드시 순서대로 있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연속적 시간에서는 회상 기법이 사용되든 그렇지 않든 관객이 파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건의 진행이 배열된다.(아크 플롯)

비연속적 시간에서는 사건이 시간적 순서와 관계없이 마구잡이로 진행되거나 시간적 순서를 불분명하게 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들은 사건의 선후 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안티 플롯)

인과성(아크 플롯) 대 우연성(안티 플롯)

일관되는 사실성이란 인물들과 세계 사이의 관계 방식을 설정해내는 허구적 장치로서, 이야기의 전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이 관계에 의해서만 의미는 창조될 수 있다.(아크 플롯)

일관되지 않는 사실성이란 상호 작용의 방식을 뒤섞어놓아 하나의 이야기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각각 다른 종류의 사실성들에 근거하게 함으로써 이야기의 부조리성을 드러내게끔 하는 설정이다.(안티 플롯)

변화(플롯) 대 정체(논 플롯)

논 플롯의 세계 안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지만 우리들은 이를 통해 냉정한 통찰력을 얻게 된다. 어쩌면 우리 안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고.

작가는 자신이 확신하는 것만을 써야 한다.

제 3장 구조와 설정

이야기에서 다뤄지는 세계에 대한 통찰력과 지식은 작품의 독창성과 탁월함을 위한 근본적인 요소이다.

이야기의 설정에는 네 가지의 차원이 있다. 시대 배경, 기간, 장소, 갈등의 정도.

갈등의 정도는 우리 사회의 구성과 마찬가지로 수직적이다. 어떤 갈등이 사회적 기관의 문제로 외화 되어 있건 개인적인 문제로 내화되어 있건 관계없이 한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생물학적, 그리고 심리학적 권력은 시대적 배경, 풍경, 의상만큼이나 사건들의 외형을 규정짓는다.

이야기는 반드시 개연성의 내적 법칙에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작가의 사건 선택은 자신이 창조해 낸 세계가 부여하는 개연성과 가능성에 제한받는다.

한계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잘 짜인 이야기를 향한 첫걸음은 좁고 잘 알아볼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창조되는 세계는 그것을 창조한 한 작가의 정신이 충분히 감쌀 수 있고, 마치 신이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잘 아는 것과 같을 정도의 깊이와 세밀함을 가질 수 있도록 좁아야 한다.

다루는 세계가 넓어질수록 세계에 대한 작가의 지식은 엷어지고, 그에 따라서 작가의 창조적 선택의 폭이 좁아질수록 이야기의 상투성은 늘어나게 된다. 다루는 세계가 좁을수록 그 세계에 대한 작가의 지식은 완전한 것이 되고 작가의 창조적 선택의 폭은 넓어진다.

기억에 대한 연구, 상상력에 의한 연구, 사실에 대한 연구

이야기란 서술형으로 이어지는 집적된 정보가 아니라 의미가 집약된 절정을 향해 관객을 몰아가는 사건들의 설계를 의미한다.

창의성이란 어떤 것을 포함시키고 어떤 것을 제외시킬지를 결정하는 창의적 선택을 의미한다.

제 4장 구조와 장르

러브스토리, 공포영화, 현대 서사극, 서부극, 전쟁 영화, 성장의 플롯, 회복의 플롯, 징벌의 플롯, 시험의 플롯, 교육적 플롯, 각성의 플롯, 코미디, 범죄극, 사회극, 액션/모험, 역사극(과거의 것은 반드시 현재화되어야 한다.), 다큐드라마, 모방 기록 영화, 뮤지컬, 공상 과학, 스포츠, 판타지, 만화 영화, 예술 영화

장르상의 규칙이란 각각의 개별적인 장르들과 그들의 부속 장르들을 규정하는 특정한 설정, 역할, 사건, 가치들을 말한다.

그리고 일단 관객들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장르를 기대하게끔 해놓고 나면 우리는 약속한 대로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

장르는 단순히 말해 현실을 보여주는 창문이며 작가가 삶을 내다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다. 창문 밖의 현실이 변화 과정에 있을 때 장르 역시 그와 함께 변화한다.

관객들은 가장 첨예하게 당대의 삶을 살고 있을 때의 느낌이 어떤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오늘날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뜻인지.

가장 위대한 이야기들은 언제 보아도 당대적이다.

제 5장 등장인물의 성격

구조가 곧 등장인물의 성격이고 등장인물의 성격이 곧 구조이다.

인물 묘사란 등장인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인간의 관찰 가능한 모든 측면들을 말한다.

진정한 성격은 인간이 어떤 압력에 직면해서 행하게 되는 선택을 통해 밝혀진다. 그 압력이 크면 클수록 성격은 더 깊숙이까지 드러나게 되며, 성격의 핵심적인 본성으로부터 행해지는 선택은 좀 더 진실성을 띤다.

그가 선택하는 방식이 곧 그의 존재를 설명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실제와 다르다는 것.

그처럼 깊이가 없고 다양한 측면이 없는 사람들도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

인물 묘사와 상반되는 성격의 발현은 주요 등장인물들에게 핵심적인 사항이다.

우선 이야기가 주인공의 인물 묘사를 펼쳐 놓는다.

두 번째로 곧이어 우리는 이 성격의 중심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세 번째로 이러한 본질은 인물의 외양과 대립되는 것으로, 서로 대립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상호 대조적인 성격을 띤다.

네 번째로 인물의 내적 본성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그 인물에게 더욱더 거대한 압력을 가하고, 따라서 인물은 점점 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다섯째로 이야기의 절정에 도달할 무렵, 이러한 일련의 선택들은 인물의 인간성을 극적으로 바꾸어놓는다.

모든 이야기들은 인물 중심적이다.

인물의 성격은 이야기의 설계, 즉 구조를 통하지 않고는 깊이 있게 표현될 수 없다.

이야기는 인생에 대한 은유이고 인생이란 시간 속에서 사는 것이다.

마지막을 위해 최선의 것을 남겨놓으라.

반드시 현실적으로 납득이 가는 설정을 마련해야 한다.

제 6장 구조와 의미

모든 예술은 아름다움과 조화를 통해 억압과 불화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창의성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으로 인해 질식해 버린 삶을 복구하고, 진실을 향해 예민하게 본능적으로 뻗쳐 있는 감각을 통해 현실과의 연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인간의 원초적 필요에 근원하고 있다.

예술에 의해 형식화되지 않은 인생 그 자체는 혼란스러운 경험으로 남아 있을 뿐이지만 미학적 정서는 우리가 아는 것, 느끼는 것들에 질서를 부여해서 이 세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이해하게 만들어준다.

창작의 과정은 다음 두 가지의 아이디어가 한데 묶여서 만들어진다. 첫째는 전제이다. 이것은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아이디어이다. 두 번째는 주도적 아이디어이다. 이것은 인물의 행동과 마지막 장의 절정에서 드러나는 미학적 정서를 통해 표현되는 이야기의 궁극적 의미를 말한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 다 알고 길을 떠나는 경우란 드물다. 글쓰기는 발견의 과정이다.

관객을 이해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관객이 믿도록 만들어야 한다.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생각을 증명하는 방식 또한 함께 만들어야 한다.

이야기의 전개는 진실을 창조적으로 보여주는 과정이다. 이야기는 어떤 아이디어에 대한 살아 있는 증명이고 그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어떤 이야기의 사건 구조는 첫째, 작가가 어떤 아이디어를 표현해 내고 둘째, 설명 없이도 그 아이디어를 증명해 보이는 도구 그 자체이다.

숙련된 이야기꾼은 절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렵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즉 극화시키는 것이다.

진정한 주제는 한 단어가 아니라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하나의 분명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해서 만든 작품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관객들은 작가의 아이디어에 들어 있는 함의를 자신들의 다양한 삶의 영역에 적용시키는 가운데 작품 속에서 더욱 다양한 의미를 발견해 낸다. 그와 반대로 작가가 이야기 안에 많은 아이디어를 포함시키려 하면 할수록 관객들은 자신의 내면을 걸어 잠근 채 그 작품이 자신들과는 무관한 단편 쪼가리들로 분해되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게 된다.

주도적인 아이디어는 이야기의 의미, 변화의 이유와 방식, 관객이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삶에 대한 관점 등을 담아내는 가장 정화된 방식이다.

이야기의 종결부를 검토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절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결과로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떤 종류의 가치(긍정적 또는 부정적)들로 충만하게 되는가? 그런 후에는 이 절정으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의 기본적인 준거들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보자. 이런 가치들을 현실화시켜 주는 가장 주된 이유, 동력, 수단은 어떤 것들인가? 이 두 질문들에 대해 대답하는 문장이 바로 작가의 주도적인 아이디어이다.

주제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와 부정적인 가치가 역동적으로 교직 되어 가는 가운데 이야기는 진전된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둘러싼 긍정과 부정의 주장은 두 주장이 정면으로 부닥치는 위기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줄곧 반복되면서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 과정 속에서 절정이 심화되고 여기에서 둘 중의 한 아이디어만이 살아남게 된다.

둘 중의 어느 것이든 마지막 절정을 이루는 사건에서 극화되는 쪽이 가치와 근거, 즉 한 이야기의 결정적이고 근원적인 의미를 밝히는 가장 정화된 문장을 이루는 주도적 아이디어가 된다.

이야기를 논쟁적으로 구성할 때 양쪽의 가치 모두가 균등한 힘을 가지도록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작가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장 효과적으로 증명하는 방법은 그것을 얼마나 분명하게 단언하느냐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가 작가 자신이 배열해 놓은 강력한 적들을 얼마나 통쾌하게 분쇄하는가에 있다.

이상론자, 비관론자, 아이러니스트

제 3부 이야기 구성의 원칙들

제 7장 이야기의 실체

주인공은 이야기의 중심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자로서 등장인물의 모든 면을 명백하게 구현해 낸다.

두 명 이상의 등장인물이 복수 주인공을 형성하려면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주인공 그룹에 속한 모든 개인들은 한 가지 욕망을 공유해야 한다. 둘째, 그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고락을 함께해야 한다.

무언가를 바랄 줄 알고, 그를 위해 행동을 취할 줄 알고, 그 행동의 결과에서 오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부여된 존재라면 어떤 종류의 존재이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주인공은 의지력이 강한 인물이다.

주인공은 의식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은 또한 자기모순적인 무의식적 욕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주인공이 자신의 욕망의 대상을 추구해 나가는 능력에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주인공은 최소한 그의 욕망을 달성할 기회를 가져봐야 한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볼 최소한의 가능성도 없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루지 못할 욕망을 쫓는 일에 전 생애를 낭비하고는 다만 자신이 조금 부족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죽어간다. 이런 고통스러운 관찰이 솔직한 것일수록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으려 한다. 대신에 마지막까지 희망을 이고 가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의식적, 무의식적인 욕망을 끝까지, 이야기의 장르와 설정에서 정해지는 인간 한계의 끝까지 추구해 나갈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 예술은 인간 존재의 한계와 한계 사이를 왕복하는 진자 운동에 관한 것이다.

이야기의 마지막 사건은 관객이 그것 이외에는 다른 결말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가 되도록 치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주인공은 호감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한편 주인공은 반드시 감정 이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관객은 주인공의 깊은 내면 속에서 자신과 주인공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인간적인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가 아주 감동적일 경우에는 관객이 한 영화의 등장인물 모두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관객이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과 이야기의 연결 관계가 단절된다.

관객이 주인공과 그의 삶 속에서 바라는 것에 자신을 동일시할 때, 사실 그것은 관객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욕망을 정당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물의 중심이란 인간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더 이상 축소될 수 없는 어떤 핵심을 의미한다.

내적 갈등, 개인적 갈등, 초개인적 갈등

이야기는 주관성과 객관성의 영역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

주인공의 주관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가 취한 행동은 그가 처한 상황 속에서 가장 최소한의 보수적인 것이되, 또한 그가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내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 행동을 취하는 순간, 그의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대상의 영역, 즉 앞서 말한 개인적 관계와 초개인적 관계, 또는 이 두 가지가 혼합된 영역은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거나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반응을 나타낸다.

그를 둘러싼 세계가 보이는 이런 반응은 그가 행동을 취하기 전에 그와 그의 욕망 사이에 놓여 있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하면서 그의 욕망을 차단한다. 그의 행동은 그의 주변 세계와 협력 관계를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적대적인 힘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어 그가 가지고 있던 주관적인 기대와 실제로 돌아오는 반응 사이에는 간극이 생긴다.

모든 인간은 의식적으로 건 무의식적으로 건 자신의 의도에 부합하는 결과가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행동을 취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 가까운 친지들, 우리의 사회,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최소한 이해하고 있기를 바라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자신과 주변의 이웃들,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 것에 의거해서 행동한다. 그러나 이 진실은 우리가 완전히 알 수는 없는 종류의 것이다. 다만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바로서의 진실일 뿐이다.

또한 우리는 어떤 종류의 결정도 자유롭게 내릴 수 있으며 어떤 행동도 자유롭게 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내리는 모든 선택과 우리가 취하는 모든 행동은, 그것이 즉각적인 것이건 계획된 것이건 그동안 우리에게 축적되어 온 경험, 상상력, 꿈꿔 오던 것들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축적의 결과물이 주변 세계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결과와 아마도 같을 것이라는 개연성에 대한 기대 속에서 우리의 행동을 선택한다. 그러나 막상 행동을 취하고 나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필연성이다.

필연성은 절대적인 진실을 뜻한다. 필연성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할 때 실제로 일어나는 어떤 결과를 지칭한다. 이 진실을 우리가 취한 행동이 주변 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포괄하고 그 반응에 감히 맞설만한 용기가 있을 때에만 그 참뜻을 드러낸다. 이 반응은 어떤 특정한 순간에 처해 있을 때 우리 존재의 진실이며 그 바로 전 순간에 우리가 믿고 있던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필연성은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개연성과 반대로 반드시 일어나야 하고 또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을 지시한다.

허구적 현실성 속에서 일단 이 간극이 벌어지면, 의지와 능력을 갖춘 등장인물은 최소한의 보수적인 행동만 가지고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는 두 번째의 행동을 취할 기회를 얻기 위해 스스로를 추슬러서 이 간극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인생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어떤 인간 욕망의 가치는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감수해야 하는 위험의 정도에 직접적으로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그 가치가 높을수록 위험 또한 높다. 우리는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한다.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지속되는 위험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는 반드시 표면에 드러나 있는 것을 의심하고 명백해 보이는 것의 대립물을 탐색해야 한다. 표면에 드러나 있는 가치들로 대상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삶을 구성하는 것들의 표면을 벗겨내고 그 안에 감춰져 있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적절해 보이는 어떤 것, 다시 말해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 진실은 바로 간극 안에 들어 있다.

개연성과 필연성 사이의 단절로 인해 형성되는 공백 그 자체가 바로 이야기의 실체이다.

간극이 곧 동력이다.

제 8장 도발적인 사건

이야기는 다섯 부분으로 설계되어 있다. 도발적인 사건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첫 번째 주요 사건으로 그 뒤에 이어지는 네 가지 다른 요소들, 즉 발전적 갈등, 위기, 절정, 결말을 가동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그럼에도 등장인물의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들이 보내는 하루 스물네 시간의 모든 측면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일만이 아니라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 종교 생활은 어떤지, 애정 생활은 어떤지에 대해서까지 말이다.

이 세계의 정치는 어떤가?

사람들이 무언가를 위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불균등한 권력관계가 발생한다.

이 세계에는 어떤 의식이 있는가?

등장인물들의 식습관은 어떤가?

이 세계에서는 어떤 가치들이 인정받고 있는가?

이 글의 장르 또는 혼합 장르는 무엇인가?

등장인물들의 개인사는 어떤가?

배경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

배경 이야기는 등장인물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일련의 과거 사건들로서, 작가가 앞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는 데 바탕이 되는 이야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배역은 어떤 식으로 설정되어 있나?

다양한 역할들 사이에서 서로 대조되거나 팽팽하게 대립되는 태도들의 네트워크를 고민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건에 대해서 두 인물이 같은 태도를 보인다면, 작가는 그 둘을 한 사람으로 합쳐버리거나 둘 중 하나를 퇴장시켜야 한다. 등장인물들이 같은 반응을 보일 경우 그만큼 갈등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작가의 직업 방향은 그와 정반대로 갈등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극대화시켜야 한다.

관객이 작품에 정서적으로 개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원칙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자기 동일시이다. 두 번째, 신빙성이다.

신빙성은 세부 사항의 전달에 달려 있다. 작가가 상당한 정도의 주요 세부 사항들을 제공하면 관객들의 상상력이 나머지를 보충하여 신빙성을 갖춘 전체 이야기가 완성된다.

도발적인 사건은 주인공의 삶의 균형을 급격하게 뒤흔들어놓는 힘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은 반드시 도발적인 사건에 대해 반응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러므로 도발적인 사건은 우선 주인공의 삶의 균형을 깨뜨리고 난 후, 다음에는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고 싶다는 욕망을 그의 마음속에 일깨워준다.

주인공에게 무의식적인 욕망이 없을 경우에는 의식적인 욕망이 골격이 된다. 그러나 반면에 주인공에게 무의식적인 욕망이 있다면 이것이 이야기의 골격이 된다.

모든 이야기는 추구의 형식을 가진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주인공의 삶의 균형을 깨뜨린다. 이로 인해 주인공의 마음속에는 깨진 삶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의식적, 무의식적 욕망이 일어나고 주인공은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적대적인 힘들(내적, 개인적, 초개인적)에 맞서가면서 자신의 욕망의 대상을 추구해 나가게 된다. 주인공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과정을 간단히 일컫어 이야기라 한다.

첫째, 관객이 도발적인 사건을 보는 순간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될까? 하는, 그 이야기의 가장 주된 극적 질문이 관객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일어나게 된다.

둘째, 도발적인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나면 필수적인 장면의 이미지가 관객들의 상상 안에 자리 잡는다.

사실상 작가가 행하는 모든 선택, 즉 장르, 설정, 인물, 분위기 등은 예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하나하나의 대사나 행동의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관객에게 어떤 특정한 종류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심어준다. 그리하여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관객은 작가가 심어준 기대가 충족되는 즐거움을 얻는다. 그러나 예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도발적인 사건을 통해 필수적인 장면(위기)에 대한 어떤 특정한 인상을 관객들의 상상력 안에 심어주는 것이다.

가능한 한 빨리 중심 플롯의 도발적 사건을 소개하되 그 기회가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들여와야 한다.

작가들은 관객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의 양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서 등장인물이나 그들의 세계에 대해 관객들이 이미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항들을 시시콜콜 늘어놓는 실수를 범한다.

어쨌거나 사건이란 무엇인가? 그의 견해로 사건이란, 한 여자가 식탁에 조용히 손을 올려놓고 어떤 독특한 눈길로 당신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지극히 사소한 것도 포함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은 어떤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 최악의 사건이 최고의 사건으로 전환될 수 있는가?

도발적인 사건의 효과는 인간의 한계에까지 도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도발적인 사건은 주인공의 삶을 뒤흔들어놓아 그의 내부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격동 속에서 작가는 이야기의 절정과 대단원을 찾아내어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이야기 속의 세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

제 9장 장 설계

점진적인 얽힘이란 인물들과 맞서는 적대 세력이 점점 강력해지면서 갈등이 점차 심해진다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갈등은 주인공의 욕망을 가로막고 기대와 결과 사이에 간극을 벌린다.

이야기는 행동의 수위를 점차 낮춰갈 게 아니라 오히려 점차 강도를 더해 가서 마지막에는 관객이 보기에 최대한 극단적인 행동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즉 이야기 안에서 모든 일이 갈등을 통해 진행된다.

이야기는 삶의 은유이고 산다는 것은 곧 쉴 새 없는 갈등의 연속이다.

사르트르의 말마따나 희소성, 즉 보편적이고 영속적인 결핍이야말로 실재의 본질이다.

다양한 층위에 따라 갈등의 질이 변할지라도 인생 전체에서 갈등의 양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점이다. 언제나 무언가는 부족하게 마련이다.

가령 사람이 외적인 욕구를 어떻게든 충족시켜서 바깥세상과 큰 무리 없이 지낸다 하더라도 그 평온함은 얼마 못 가 지루함으로 바뀐다.

인간이 부족함이 없어 욕구를 상실할 때 겪는 내적인 갈등이 바로 지루함이다.

사랑과 자기 가치를 발견하는 문제나 혼란스러운 내면의 평안을 회복하는 문제, 인간을 둘러싼 거대한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문제, 인생은 이런 궁극적인 문제들에 관한 것이다.

복잡한 이야기를 구성하려면 인물이 삶의 모든 층위에서 갈등을 겪게 해야 한다. (내적 갈등, 개인적 갈등, 초개인적 갈등)

첫째, 등장인물의 수를 너무 늘리지 말고 둘째, 이야기에 너무 여러 장소를 넣지 마라.

마지막 장은 셋 중 가장 짧아야 좋다. 이상적으로 마지막 장에서는 행동을 절정으로 치닫게 해 관객들이 일종의 가속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 절정의 수가 늘어나면 상투적인 표현이 생기기 쉽다.

장의 수가 늘어나면 절정의 효과가 감소되고 이야기가 장황해지기 쉽다.

중요한 반전의 숫자에 따라 이야기가 다양해질 수 있다.

발단을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형태가 다양해진다.

장 구조의 리듬은 중심 플롯의 발단이 어디에 놓이느냐에 달려 있다.

허위 결말, 너무나 완결적이어서 이야기가 끝났구나 잠시 생각하게 하는 장면을 일컫는다.

주인공이 욕망의 대상을 획득해서 마지막 장의 이야기 절정을 긍정으로 바꾼다면, 그 앞 장의 절정은 반드시 부정적이어야 한다.

보조 플롯이 중심 플롯의 주제 의식과 모순되게끔 배치해서 영화에 아이러니를 더할 수 있다.

보조 플롯이 중심 플롯의 주제 의식을 되울리게끔 해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한 다양한 변주로 영화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

중심 플롯의 발단이 지연되어야 할 경우에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치로서 보조 플롯이 필요할 수 있다.

보조 플롯으로 중심 플롯을 더 복잡하게 얽을 수 있다.

관습을 어기거나 깨는 건 자유이지만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관습보다 더 중요한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점.

제 10장 장면 설계

장면 설계의 구성 요소는 전환점, 복선/보상, 감정의 동학, 선택이다.

일치된 시간과 공간, 또는 연속적인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행동이 갈등을 거치면서 인물의 삶을 조건 짓는 가치 값을 뒤바꾸는 과정이 한 장면이다.

길이와 장소에 상관없이 한 장면을 하나로 묶어주는 건 욕망과 행동과 갈등과 변화이다.

전환점은 놀라움, 호기심의 증대, 통찰, 새로운 방향이라는 4중 효과를 유발한다.

설정해 둔다는 건 인식과 인식 사이에 틈을 만들어 둔다는 말이고, 보상한다는 건 관객에게 인식을 선사해서 그 간극을 메운다는 말이다.

설정은 관객이 머릿속으로 영화를 되짚어볼 때 상기될 수 있을 만큼 이야기에 단단히 심어져 있어야 한다. 복선이 너무 희미하면 관객이 놓치기 쉽다. 반면 너무 억지로 강조되면 전환점을 예고해 주는 꼴이 된다.

전환점이 통찰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감정의 동학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관객의 정서적인 경험을 만들어내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감정에는 즐거움과 고통, 이 두 종류만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야기에서 가치가 전환될 때 관객은 감정적인 동요를 겪는다. 첫째, 관객은 등장인물과 동화된다. 둘째, 인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고 인물이 그것을 가지기를 바라게 된다. 셋째, 당시 인물의 상황에서 어떤 가치가 문제가 되고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인물의 상승세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 감정도 다시 급속히 잠잠해진다. 감정은 비교적 짧고 강렬한 경험이라 한번 강하게 치솟아 달아오르고 나면 금세 가라앉는다.

곱절로 부정적인 상황에서 다시 아이러니하게 긍정적인 상황으로 이야기가 전환됨에 따라 관객의 감정은 앞서 보다 더 강력한 긍정을 띠게 된다.

효과 감소의 법칙은 이런 것이다. 어떤 일을 자주 경험하면 할수록 그 효과가 줄어든다는 것.

때로는 이야기가 긍정에서 긍정으로, 또는 부정에서 부정으로 이동할 수 있다. 단, 이때는 두 사건들이 아주 현격한 대조를 이루어서 돌이켜보았을 때 앞의 사건이 거의 반대의 성격을 띨 정도라야 한다.

자주 혼동되긴 하지만 감흥은 감정이 아니다. 감정은 빨리 치솟아 달아오르는 짧은 경험이다. 반면, 감흥은 오래도록 충만하게 남아 있는 정취로서, 며칠, 몇 주, 또는 몇 해 동안 내내 관객의 인생을 감돌기도 한다.

영화에서 감흥은 분위기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분위기는 영화의 텍스트에 따라 만들어진다. 빛의 질감, 색감, 연기와 편집의 템포, 캐스팅, 대사의 스타일, 미술, 음악 등등. 이런 영화적 특성들이 모두 합쳐져서 특정한 분위기를 창조해 낸다. 일반적으로 분위기는 설정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복선이다. 즉 관객의 기대를 미리 준비하고 형성하는 방법인 셈이다. 하지만 장면의 설정은 어떤 감정을 긍정으로 만들지 부정으로 만들지 결정하는 문제인 반면 분위기는 한순간 한순간 감정을 특수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전환점의 중심은 인물이 내리는 행동의 선택이다.

선과 악 또는 옳고 그름 간의 선택은 진정한 선택이 아니다.

진정한 선택은 딜레마이다.

첫째, 양립이 불가능한 두 가지 선 사이의 선택

둘째, 두 가지 악 사이에서 더 작은 악을 고르는 선택.

양자 간의 갈등은 딜레마가 아니라 긍정과 부정 사이의 동요이다.

진정한 선택을 구축하고 창조하려면 상황을 세 축으로 구성해야 한다. 삶과 마찬가지로 의미 있는 결정은 3각형의 구도를 갖는다.

양립 불가능한 선 사이의 선택과 두 악 중 더 작은 악의 선택이 결합될 때 주로 가장 설득력 있는 딜레마가 탄생한다.

갈등의 층위가 무엇이든 실제이든 허구이든 상충하는 욕망들 간의 선택이면 된다. 작가가 만들기 나름이다. 그러나 한 가지 보편적인 원칙이 있다. 즉 선택은 의심이 아니라 딜레마라는 점이다.

제 11장 장면 분석

정작 문제는 장면이 어떻게 써져 있는가가 아니라 장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표면상 인물들이 어떻게 말하고 움직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겉모습 뒤에서 실제로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어떤 장면이 왜 실패하는지 보려면 전체를 각 구성 요소들로 분해해 봐야 한다.

텍스트란 예술 작품의 감각적 표면을 일컫는다. 영화의 텍스트는 스크린 상의 이미지와 대사, 음악, 음향을 포괄한 사운드 트랙이다. 우리가 보는 것과 듣는 것. 사람들이 하는 말과 하는 행동. 보조 텍스트는 그 표면 아래 놓인 알맹이, 즉 겉으로 드러나거나 행동으로 가려진 생각과 감정을 뜻한다.

보이는 그대로인 것은 없다. 이 원리는 시나리오 작가에게 삶의 이중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 즉 모든 것이 최소한 두 층으로 존재한다는 인식을 요구한다. 따라서 작가는 동시에 이중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 첫째로는 삶의 감각적 표면, 즉 시각과 소리, 행위와 말을 글로 묘사해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는 내면의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욕망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행동과 반응, 충동과 이드, 경험이나 속성에 따른 명령 등이 모두 여기 포함된다.

현실에서도 그렇듯 허구의 세계에서도 살아 있는 가면으로 진실을 가려야 한다. 인물의 실제 생각과 감정은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 뒤에 숨어 있다.

영화는 보이는 것을 넘어 실재하는 것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한 겹이 아니라 아주 깊숙한 데까지, 그리고 한순간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이야기 작가는 삶이 주지 않는 즐거움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누구도 결코 진실을 완전히 표현할 수 없다. 정작 진실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작가의 상상에 따라 어떤 말이나 행동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한 진실을 말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은 없는 까닭에, 그리고 적어도 인간의 행동에는 언제나 무의식의 차원이 존재하는 까닭에 작가는 보조 텍스트를 깔아 두어야 한다.

장면을 분석하려면 장면의 텍스트와 보조 텍스트 모두를 행위 유형별로 분할해야 한다.

1단계 : 갈등을 파악하라.

언제나 해답의 열쇠는 욕망이다.

2단계 : 도입부의 가치를 적어둬라.

그 장면에서 문제가 되는 가치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장면의 도입부에서 그 가치 값이 긍정인지 부정인지 적어둬라.

3단계 : 장면을 비트들로 분해하라.

비트는 인물 행위에서 일어나는 행동/반응의 교환이다.

외관상으로 즉 인물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표면 밑으로 인물이 실제로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살펴라.

행동만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까지 나타내 주는 표현을 찾도록 노력해라.

4단계 : 장면 종결부의 가치를 적어보고 도입부의 가치와 비교하라.

장면의 끝에서 인물의 상황을 조건 짓는 가치 값을 조사하고 그것을 긍정/부정으로 서술하라.

두 기록이 똑같으면 그간의 행위는 사건이 될 수 없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으니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셈이다. 반면 가치 값이 변화했다면 장면 내에서도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5단계 : 비트들을 개괄적으로 검토해서 전환점을 찾아라.

제일 앞의 비트부터 시작해서 인물의 행동을 묘사한 동명사 어구들을 검토하라.

장면의 전개 과정 중에 기대와 결과 사이에 중대한 간극이 벌어짐으로써 장면의 가치 값이 변화되는 순간을 찾아라. 정확히 이 순간이 전환점이다.

제 12장 구성

구성이란 장면의 배치와 연결을 뜻한다.

가장 위험한 유혹은 어떻게든 이런 이야기들을 모두 포함하려는 것이다.

통일성과 다양성

혼돈을 표현하는 순간에도 이야기는 통일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저러한 발단으로 인해 이러저러한 절정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문장은 어떤 플롯에서든 논리적이어야 한다.

속도 조절

한 장면 한 장면 넘어갈 때마다 긴장을 아주 조금씩 늘리면서 이야기를 틀어가면 결말에 이르기도 전에 관객은 기진맥진한다. 너무 지쳐 이야기 절정에 쏟을 기운이 없어지는 것이다.

리듬과 템포

리듬을 결정하는 건 장면들의 길이다.

숏이 반복되면 표현력이 점점 사라진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단조로워지고 흥미를 잃은 관객의 시선은 스크린에서 멀어지게 된다.

템포는 한 장면 안에서 대사와 행동, 또는 둘의 조합을 통해 진행되는 활동의 수준을 일컫는다.

잘 써진 이야기에서는 장면과 시퀀스가 전개될수록 이야기의 속도가 빨라진다. 장의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리듬과 템포를 활용해서 장면의 길이를 점차 줄이는 대신 장면 안의 활동을 활발하게 만드는 것이다.

절정 같다는 말은 짧고 폭발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심오한 변화가 일어남을 뜻한다.

더 자주 멈출수록 중단의 효과는 줄어든다. 중요한 절정 앞에 길고 느린 장면들이 선행한다면 정작 긴장을 유지해야 할 중요한 장면이 싱겁게 느껴질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나선형으로 템포를 진행시키는 틈틈이 리듬을 끼워 넣음으로써 중단의 순간을 벌어놓아야 한다. 그래야 절정의 순간이 왔을 때 이야기의 흐름에 제동을 걸고 그 순간을 길게 늘여 긴장을 유지할 수가 있다.

점진적 진행을 표현하는 방법

이야기가 정말로 점진적으로 진행될 때는 점점 더 강한 능력과 의지를 요구하며 인물의 삶에서 점점 더 큰 변화를 일으키고 인물을 점점 더 큰 위험에 빠뜨린다.

사회적 진행 - 인물 행동의 효과를 사회로 확대시켜라.

처음에는 두어 명의 중심인물들만 연루시켜 사사로운 이야기에서 출발하라. 그러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행동이 주변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점점 여러 사람들의 삶과 접촉하고 그것을 변화시키게 하라.

개인적 진행 - 인물의 은밀한 관계와 깊숙한 내면 생활로 이야기의 행동을 끌고 가라.

이야기의 설정상 너무 폭을 넓히기가 어렵다면 대신 이야기를 깊숙이 끌고 가라. 균형이 필요하지만 비교적 해결 가능해 보이는 개인적 갈등이나 내적 갈등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라. 그리고 작품이 전개될수록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도덕적으로 이야기가 표면을 뚫고 들어가 어두운 비밀, 즉 공적인 가면 뒤에 감춰진 은밀한 진실에 다가가도록 만들어라.

상징적 상승 - 개별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특수한 것에서 원형적인 것으로 이야기 이미지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키워가라.

처음에는 있는 그대로만을 의미하는 행동, 장소, 역할 등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점점 의미가 커지는 이미지들이 골라지면서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인물, 설정, 사건 등이 보편적인 관념을 상징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상승 - 아이러니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라.

아이러니는 이야기의 즐거움이 가장 미묘하게 표현되는 방식으로 아, 저게 바로 인생이지 하는 달가운 느낌이다. 아이러니는 인생의 이중적인 모습을 목격한다. 보이는 것과 실질적인 것 사이의 한없는 균열을 인식하고 인간의 역설적인 존재를 가지고 장난한다.

첫째, 항상 원하던 것을 마침내 손에 넣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둘째, 목표를 향해 열심히 앞으로 돌진해 왔는데 알고 보니 바로 코앞에 놓여 있었다.

셋째,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 행복에선 없어선 안 될 것을 내팽개쳐 버렸다.

넷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한 행동이 알고 보니 오히려 정확히 목표에서 멀어지게 하는 일이었다.

다섯째, 무언가를 파괴하기 위해 한 행동이 거꾸로 자기가 그것에 파괴당하기에 꼭 알맞은 일이 되어버렸다.

여섯째, 자기를 비참하게 만들 게 틀림없다고 믿는 무언가가 수중에 들어와 그걸 없애려고 갖은 애를 쓰는데 알고 보니 그게 행복한 선물이었다.

아이러니한 진행에서 핵심적인 것은 확실성과 정확성이다.

주인공들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고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정확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인생이 가, 나, 다, 라, 마 처럼 순서대로 정해져 있는 줄 안다. 바로 그때 인생은 방향을 틀며 그들을 우스갯거리로 만든다. 날마다 그런 건 아니지. 오늘은 마, 라, 다, 나, 가라고. 미안허이.

이동의 원칙

진행감이 없는 이야기는 장면 장면을 넘어갈 때마다 비틀거리기 쉽다. 사건들을 연결하는 고리가 없는 탓에 연속성이 거의 없다.

제3의 요소는 이동을 위한 중심축으로 두 장면 간에 공통된 것이거나 대립된 것이다.

인물의 성격 묘사, 행동, 대상, 말, 빛의 질감, 소리, 아이디어

제 13장 위기, 절정, 결말

위기

위기는 5단계 형식에서 셋째 부분이다.

인물의 입에서 저것이 아니라 이것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인물은 매번 임의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각 장면마다 인물이 굳이 특정한 행동을 하는 것도 그들이 내린 결정의 결과이다.

위기는 여느 상황과 다르다. 이것은 궁극적인 결정이다.

이제 그는 막바지에 선 자신을 발견한다. 다음 행동이 마지막 행동이 될 것이다. 더 이상 내일은 없다. 또 다른 기회는 오지 않는다. 이 위험한 기회의 순간이 이야기에서 가장 긴장된 순간이다. 결과가 어떻게 될까 하는 물음의 답이 바로 이다음 행동으로 결정되리라는 걸 주인공도 관객도 느끼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강력하고 첨예한 적대 세력과 대면한 상황에서, 욕망의 대상을 성취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로써 자기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주인공 앞에 딜레마가 놓인다.

여기서 주인공이 내리는 선택이야말로 그의 성격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며 가장 근본적인 그의 사람됨을 드러내 준다.

위기 단계에서 주인공의 의지력은 가장 혹독한 시험을 받는다.

절정 안의 위기

위기에서 주인공이 선택한 행동은 이야기의 최종 사건을 이루며, 긍정, 부정, 또는 아이러니하게 긍정과 부정을 모두 담은 이야기의 절정을 낳는다.

그러나 이런 절정의 순간에 작가가 한번 더 기대와 결과 간에 간극을 벌려준다면, 다시 말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개연과 필연을 분리시켜 준다면 관객은 이 위대한 결말을 평생 간직하게 될 것이다. 반전이 있는 절정만큼 만족스러운 것은 없다.

주인공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결코 자기가 기대한 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위기의 위치는 절정을 불러오는 행동의 길이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위기와 절정은 영화의 마지막 몇 분 사이에 벌어지며 한 장면에 들어 있다.

드물긴 하지만 발단에 이어 곧바로 위기 결정이 내려지면서 영화 전체가 최종 행동이 되는 경우도 있다.

위기 결정과 최후 행동은 대개 이야기의 막바지에 한 장소 내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위기가 먼저 발생하고 절정이 따로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경우, 반드시 한 컷으로 둘을 접목시켜서 영화적 시간과 장소 안에 융화시켜야 한다.

위기 결정은 반드시 느리게 정지된 순간이어야 한다.

관객은 주인공과 함께 이 딜레마의 고통을 감수하고 싶어 한다. 이 장면을 정지시키는 건 마지막 장의 리듬이 여기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감정을 세차게 몰아온 뒤 위기에서 그 흐름을 막아두려는 것이다. 긴장이 점점 쌓이다가 주인공이 선택을 내리는 순간 억눌렸던 에너지가 절정으로 터져 나온다.

절정

절정이 가장 중요한 주요 반전이지만 그렇다고 소음과 폭력으로 가득 찰 필요는 없다. 대신 의미가 충만해야 한다.

의미 - 긍정에서 부정으로 또는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는 가치의 대변화. 아이러니한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음. 돌이킬 수 없는 절대적인 최댓값을 진폭으로 삼는 가치의 진동. 그런 변화에 담긴 의미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임.

모든 방면들이 이 절정에 비추어 내용상으로나 구조상으로 말이 되어야 한다. 잘라내도 결말의 효과를 해치지 않는 장면이라면 잘라내야 한다.

논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면 중심 플롯의 절정이 그 안에서 보조 플롯의 절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면 주인공의 최종 행동 하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멋진 효과를 거두게 된다.

이런 중첩 효과가 불가능하다면 가장 중요도가 낮은 보조 플롯부터 먼저 절정에 이르게 하는 게 좋다. 이렇게 중요도가 낮은 순으로 차례로 이어서 전체적으로 중심 플롯의 절정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다.

윌리엄 골드먼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이야기 결말의 핵심은 관객이 원하는 것을 주되 관객이 기대치 못한 방식으로 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마따나 반드시 결말은 필연적이고 예상 밖이어야 한다. 발단 단계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해 보이던 것이 절정에 이르러 관객이 이야기를 되돌아볼 때는 도저히 다른 경로로는 이야기가 전개되지 못했을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필연적이다. 인물들과 주변 세계에 대해 이해한 내용에 비추어봐서 절정이 필연적이고 만족스러워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예상 밖이어야 한다. 관객이 예견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최종 행동에 담긴 핵심 이미지는 앞의 모든 내용을 반영하고 되울림 한다. 이야기와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이것을 떠올리면 전체 영화의 느낌이 한 번에 살아나는 그런 이미지이다.

결말

절정 뒤에 남은 부분이 모두 결말에 속하며 세 가지의 쓰임새가 가능하다.

첫째, 논리적인 전개상 중심 플롯의 절정 안에서나 그 이전에 보조 플롯의 절정을 그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 마지막에 이것만 다루는 장면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잘못하면 엉성하고 어색해진다.

둘째, 절정의 효과가 낳은 파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의 두 가지 쓰임새가 아니더라도 모든 영화에는 관객에 대한 예의로 결말이 있어야 한다.

카메라가 몇 초 동안 차분히 이미지를 담아내는 묘사를 시나리오 맨 끝 줄에 반드시 덧붙여라. 그 사이 관객이 숨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점잖게 극장을 나설 수 있도록 말이다.

제 4부 작가의 작업

제 14장 대립의 원칙

대립의 원칙 - 주인공과 주인공의 이야기를 지적으로 흥미진진하고 감정적으로 흡인력 있도록 만드는 것은 오로지 적대 세력의 역할이다.

인물과 맞서는 대립 세력이 강력하고 복합적일수록 인물과 이야기는 더 완벽하게 구현될 수밖에 없다.

대립 세력이라 함은 인물의 의지와 욕망에 맞서는 모든 세력의 총칭이다.

부정성에도 여러 정도가 있다.

첫째, 상반되는 가치, 즉 긍정의 정반대가 있다. 이 경우에는 정의의 반대인 불의가 된다. 위법 행위가 저질러진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가치와 그것에 상반되는 가치 사이에 다시 어긋난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어느 정도 부정적이지만 완전히 정반대는 아닌 상황이다. 정의의 어긋남은 부당함일 것이다. 부정적이긴 하지만 반드시 불법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상반되는 대립이 인간 경험의 최대치는 아니다. 더 극한적인 것으로 부정의 부정, 즉 이중으로 부정적인 대립 세력이 있다.

인간 경험의 한계까지 갈등을 깊고 넓게 전개하는 이야기라면 반드시 어긋남과 상반, 그리고 부정의 부정이 포함된 궤도를 따라야 한다.

부정의 부정이란 인생의 상황이 양적으로만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악화되는 복합적인 부정을 말한다.

정의의 어긋남과 부정의 부정의 차이는 위법자들의 비교적 제한되고 일시적인 힘 대 입법자들의 무제한적이고 지속적인 힘 사이의 차이다. 또한 법이 존재하는 세계와 힘이 곧 정의인 사회 간의 차이이기도 하다. 단순한 범죄 행위는 절대적인 불의가 아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저지르는 합법적인 범죄야말로 최악의 불의이다.

긍정, 어긋남, 상반, 부정의 부정

정의, 부당함, 불의, 전횡

사랑, 무관심, 혐오, 자기혐오

사랑, 무관심, 혐오, 사랑을 가정한 증오

진실, 악의 없는 거짓말 또는 절반의 진실, 거짓말, 자기기만

의식, 무관심, 죽음, 저주

부유함, 중간층, 가난과 가난으로 인한 고통, 부자이지만 가난의 고통을 겪는 경우

의사소통, 불화, 고립, 정신 이상

성공, 타협, 실패, 포기

지혜, 무지, 우둔함, 지성으로 여겨지는 우둔함

자유, 제약, 예속, 자유로 여겨지는 예속

용기, 두려움, 비겁, 용기로 여겨지는 비겁

충절, 분열된 충실함, 배신, 자기 배신

성숙, 유치함, 미숙함, 성숙하다고 여겨지는 미숙함

허용된 자연스러운 성행위, 허용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거나 부자연스럽지만 허용된 경우, 부자연스럽고 허용되지 않은 경우,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경우

제 15장 해설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

극 안에 융화된 해설은 두 가지 목적에 부합된다. 첫째,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당면한 갈등을 심화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정보 전달이다.

극 중 인물들은 이미 주변과 자신들의 과거와 서로와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인물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싸움에서 그들이 아는 바를 무기로 이용하게 하라.

첫째, 관객이 이성적으로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은 절대 포함시키지 않는다.

둘째, 몰라서 혼란이 생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로 해설을 그냥 전달하지 않는다.

관객의 관심을 유지하는 길은 정보를 주는 게 아니라 이해에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해설의 속도를 조절하라.

해설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무엇일까? 바로 비밀이다. 인물들이 알리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진실 말이다.

내뱉은 말 뒤에는 말할 수 없는 게 감추어져 있다.

작가가 이야기의 통제권을 쥔 이상 관객의 알려는 욕구와 필요를 통제하는 것도 작가이다.

관객의 머릿속에 왜?라는 질문을 심어줘라.

일생에 걸친 골격을 찾기란 드문 일이다. 때문에 작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따라 사건의 중심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선 주인공의 삶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날짜를 정한 다음, 그때와 가능한 한 가장 가까운 시기에서 이야기를 출발한다.

생존 이외에 다른 가치가 거의 없는 삶을 지켜보기란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잃을 게 거의 없는 이런 상황에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통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정도밖에는 없다. 그래서 작가는 차라리 잃을 게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다. 가족, 직업, 이상, 기회, 명성, 현실적인 희망과 꿈 따위를 다룬다. 이런 삶이 균형을 잃을 때 인물들은 위험에 놓인다. 그들은 손실을 견디면서 삶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장면을 전환하는 방식은 둘 중 하나이다. 행동이 바뀌거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거나이다.

강력한 사실의 폭로는 배경 이야기에서 나온다. 인물들의 삶에서 예전에 있었던 중대한 사건들을 결정적인 순간에 폭로해서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극히 적은 경우를 제외하면 행동만 가지고 장면들을 전환하기란 무리이다. 장면과 사실의 폭로를 섞어 쓰는 게 불가피하다. 사실, 폭로의 순간이 더 충격적인 경향이 있어서 주요 전환점이나 장 절정까지 유보해 둘 때가 많다.

과거 회상

첫째, 과거 회상을 극 안에 융화시켜라.

그냥 밋밋한 과거 장면으로 되돌아가지 말고 나름의 발단, 전개, 전환점이 있는 작은 드라마를 이야기 속에 삽입해라.

잘 만들어진 과거 회상은 실제로 이야기의 속도를 가속한다.

둘째, 관객의 알려는 욕구와 필요를 조성하기 전까지는 과거 회상을 집어넣지 말라.

꿈 시퀀스

몽타주

빠르게 화면을 바꾼 이미지들의 연속으로 시간을 급격히 압축하거나 확장시키는 기법을 몽타주라 일컫는다.

화면 밖 내레이션

잘라낼 수 있는 건 무엇이든 잘라내 버려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내레이션을 빼도 이야기가 지장 없이 잘 진행된다는 건 내레이션이 좋은 용도로만 쓰였다는 뜻이다. 마치 음악의 대위법처럼 말이다.

제 16장 문제와 해답

흥미

호기심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양식을 완결 지으려는 지적인 욕구이다.

한편 관심은 삶의 긍정적인 가치들을 원하는 감정적인 욕구이다. 정의, 강건함, 생존, 사랑, 진실, 용기 등이 그런 가치이다. 인간은 부정적이라고 느껴지는 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반면 긍정적인 쪽으로는 강하게 이끌린다.

선의 중심을 찾는 이유는 사람이 누구나 스스로 선하거나 옳다고 믿고 자신을 긍정적인 것과 동일시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호기심과 관심은 관객과 이야기를 연결하는 세 가지 방법을 만들어 낸다. 미스터리, 서스펜스, 극적인 아이러니이다.

미스터리에서는 인물들이 관객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미스터리는 호기심 만으로 관객의 흥미를 얻는 방법을 말한다. 작가는 해설적인 사실들을 만들어내어 감춰둔다.

특히 배경 이야기의 사실들이 그렇다. 과거의 사건에 대해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다음 진실을 언뜻 암시만 해주고는 일부러 그대로 묻어둔다. 그리고는 곁길로 새는 이야기로 관객의 주의를 돌려서 진짜 사실을 감추는 동안 관객이 가짜 사실을 믿거나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닫힌 미스터리는 살인 사건이 보이지 않는 배경 이야기에서 저질러진다. 누가 범인 인가하는 물음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용의자가 여럿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열린 미스터리는 관객이 살인 현장을 목격해서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어떻게 범인을 잡을까 하는 물음이 이야기의 핵심인 이상 작가는 여러 용의자들 대신 여러 단서들을 마련한다.

미스터리 형식에서 범인과 탐정은 절정에 이르기 훨씬 전부터 중요한 사실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겉으로 말하지 않는다.

서스펜스에서는 관객과 인물이 똑같은 정보를 알고 있다.

서스펜스는 호기심과 관심을 함께 결합시킨다. 사실만이 아니라 결과도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관객과 인물들이 나란히 움직이며 같은 지식을 공유한다.

극적인 아이러니에서는 관객이 인물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극적인 아이러니는 사실이나 결과에 대한 호기심을 제외하고 주로 관심을 통해 관객의 흥미를 유발한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전지적인 우월함이 관객에게 부여되면서 관객의 감각적인 경험이 뒤바뀐다.

서스펜스에서 관객은 주인공의 안전을 염려하며 결과를 불안해한다. 하지만 극적인 아이러니에서 관객의 감정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인물이 뒤늦게 발견하는 순간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며 인물이 재난을 향해 가는 걸 보며 연민을 품게 된다.

대다수의 장르들은 순전히 미스터리나 극적 아이러니 중 어느 하나만 취하지 않는다. 대신 서스펜스적인 관계 안에서 나머지 둘을 혼합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놀래기

놀래는 데도 두 종류가 있다. 싸구려 깜짝쇼와 참된 놀라움이다. 참된 놀라움은 기대와 결과 간의 간극이 불시에 드러나는 데에서 생긴다. 이게 참된 이유는 이 놀라움 뒤로 통찰이 밀려들면서 허구 세계의 표면 밑에 감추어졌던 진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

첫째, 우연의 일치를 이야기에 일찌감치 불러들여서 의미가 생성될 시간을 벌어둬라.

둘째, 절대 우연의 일치를 사용해서 결말을 뒤집지 말아라. 이건 억지스러운 돌발이고 작가로서 최악의 잘못이다.

우연의 일치가 이야기를 지배할 때에는 새롭고 중요한 의미가 생성된다. 삶의 부조리함 말이다.

코미디

코미디에서는 웃음이 모든 논란을 해결한다.

코미디는 드라마보다 우연의 일치에 더 관대하다. 때론 억지스러운 돌발까지도 허용한다. 단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주인공이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는 느낌을 관객이 받아야 한다. 둘째, 그럼에도 주인공이 절대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느낌도 전달되어야 한다.

시점

시나리오 작가에게 시점이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때때로 시점 숏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점의 두 번째 의미는 작가의 시선에 해당한다.

장면 내의 시점

각 장면의 사건을 떠올릴 때 작가가 행동을 지켜보는 위치는 공간의 어디쯤인지 생각해 보라. 이게 바로 시점이다. 인물의 행위나 인물 간의 상호 관계, 인물과 주변 환경과의 상호 관계 등을 묘사하기 위해 작가가 택하는 물리적인 각도이다.

이야기 내의 시점

인물에 들이는 시간이 많을수록 인물의 다양한 행동을 찾아낼 기회도 많아진다. 결과적으로 인물에 대한 관객의 감정 이입이나 정서적인 끌림도 더 강해진다.

각색

소설의 독특한 능력과 경이로움은 내면의 갈등을 극화할 때 드러난다.

연극의 독특한 권위와 품위는 개인적인 갈등을 극화할 때 드러난다.

영화 특유의 힘과 탁월함은 초개인적인 갈등을 극화할 때 드러난다. 사회와 환경에 둘러싸여 삶과 투쟁하는 인간의 거대하고 생생한 이미지들이야 말로 영화의 장기이다.

각색을 하려면 우선 작품을 반복해서 읽어라.

각색의 둘째 원칙은 이것이다. 재창조하기를 꺼리지 말라.

위대한 이야기꾼들은 말하지 말고 보여주는 게 창작의 궁극적인 과제임을 언제나 알고 있었다.

멜로드라마

작가가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의 행동은 이미 상상 못 할 방식으로 다 행해진 지 오래다. 어느 것도 멜로드라마는 아니다. 단지 인간적인 행동일 뿐이다.

멜로드라마는 과잉 표현의 결과가 아니라 동기 부여가 빈약한 데에서 비롯된다. 너무 큰 얘기를 써서가 아니라 너무 작은 욕망으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사건의 효과는 그것을 유발시킨 원인의 총합과 비례할 수밖에 없다. 동기가 행동에 맞먹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그 장면이 멜로드라마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논리적 결함

논리적인 결함은 이야기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또 하나의 원인이다. 동기가 부족하다기보다 이야기에 논리가 부족하다고 보이면 인과 관계의 사슬에서 고리 하나가 빠진 것이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가 그렇듯 이런 결함도 삶의 일부이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일어나는 일들도 더러 있다. 그러니 삶에 관해 글을 쓰는 중이라면 결함 한두 가지쯤은 이야기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비논리적인 사건 간에 연결 고리를 급조해서 구멍을 메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 하지만 이 방법을 쓰려면 흔히 새로운 장면을 고안해야 한다. 문제는 이 장면이 앞뒤의 논리적인 맥락을 더해 주는 목적 말고는 달리 소용이 없어서 애초의 결함만큼이나 성가신 골칫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관객이 이 문제를 알아차릴지 생각해 보라. 논리적인 결함이 나타나도 관객은 그 당시에는 방금 일어난 일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걸 알아차릴 만큼 충분한 정보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너무 빠르게 일어난 일이라 눈치 차이지 않고 지나갈 수도 있다.

제 17장 등장인물

인물은 인간이 아니다. 인물은 인간 본성의 은유인 예술 작품이다. 그들의 모습은 이해할 만하게 설계된 것이다. 반면 우리 인간들이야말로 속을 알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인물의 설계는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배열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인물 묘사와 진정한 성격이다.

인물 묘사는 겉으로 관찰 가능한 모든 자질들의 총합이다.

진정한 성격은 딜레마에서 내리는 선택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어떠한 행동을 선택하느냐가 곧 그의 사람됨이다. 부담이 클수록 그 선택은 인물을 더 깊고 참되게 보여준다.

진정한 성격을 파악하는 열쇠는 욕망이다.

복잡한 배역의 경우 의식적인 욕망 만이 아니라 무의식적 욕망까지 이해해야 한다.

욕망 뒤에는 동기가 놓여 있다. 인물은 무슨 까닭으로 그것을 원하게 되었을까?

일반적으로 작가가 인물의 동기를 특정한 원인에 고정시키려 하면 할수록 관객의 머릿속에서 인물은 더 축소된다. 그보다는 동기에 대해 환한 이해에 이를 때까지 충분히 생각하되 동시에 그 원인의 둘레에 약간의 미스터리를 남겨둬라. 약간의 무리수 정도라고 할까. 여하튼 관객 나름의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인물에 대한 상상을 키워갈 여지를 남겨두라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마따나 일단 사람이 한 일을 보기 시작하면 왜 그런 일을 했는지에는 별 흥미가 없어진다.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 내리는 선택이 곧 그 인물이다. 일단 실행이 되고 나면 그 이유는 차츰 희미해져 무관해지기에 이른다.

항상 밑으로 보조 텍스트가 흐른다.

인물의 차원, 차원은 모순을 뜻한다. 인물의 깊숙한 내면의 모순이나 인물 묘사와 인물 내면 간의 모순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이 한결같아야 한다.

배역 구성, 본질적으로 다른 배역들을 만들어내는 건 주인공이다. 다른 인물들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주인공과 맺는 관계 때문이다. 각 인물은 나름의 방식으로 주인공의 다차원적인 복합성이 서술되는 데 기여한다.

장소별, 시간별로 각기 다르게 그와 상호 작용할 인물들이 있어야 한다. 이런 조역들이 주인공을 온전하게 만들어줘야 주인공의 복잡성이 일관되고 신뢰할 만해진다.

단역들은 일부러 평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루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각 사람마다 신선한 특징을 부여해서 그 배우가 등장하는 순간만큼은 연기할 맛이 나게 해야 한다.

단역을 필요 이상으로 흥미롭게 만들어서 괜히 헛된 기대를 자초하지 말아라.

모든 장면에서 인물 각자가 서로의 차원을 나타내는 성질을 끌어내는 동시에 모두가 주인공을 무게 중심으로 한 무리를 이루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코믹한 인물,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대립 세력에 맞서면서 욕망을 추구한다. 그러나 극적인 인물은 위험에서 한 걸음 물러나와 죽을 뻔했다고 깨달을 만큼은 유연성이 있다. 하지만 코믹한 인물은 다르다. 이 인물의 특성은 맹목적인 강박증이다. 웃겨야 하는데 안 웃기는 인물의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계는 그가 집착하는 대상을 찾아주는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을 창조하는 세 가지 비결

첫째, 배우가 개입할 여지를 남겨둬라.

둘째, 자기 작품의 모든 인물들과 사랑에 빠져라.

셋째, 인물은 작가의 자기 인식이다.

중대한 인간적인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다. 누구나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살면서 뭔가 가치 있는 일을 꿈꾸고 소망한다.

자신의 인간성에 얽힌 미스터리를 더 깊이 뚫고 들어갈수록, 그래서 자기를 더 잘 이해하게 될수록 남들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

제 18장 텍스트

대사는 대화가 아니다.

영화의 대사는 일상적인 대화의 리듬을 갖되 평범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첫째로 영화의 대사는 압축되고 경제적이어야 한다.

둘째, 방향이 있어야 한다.

셋째,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정밀함을 지녔음에도 대사는 평범한 대화처럼 들려야 한다.

보통 사람들처럼 말하되 현명한 사람들처럼 생각하라. 아리스토텔레스의 권고이다.

영화의 대사는 짧고 구조가 간단한 문장이어야 한다. 대개 주어-목적어-술어 이거나 주어-보어-술어의 순으로 움직인다.

대사의 문장은 완결적일 필요가 없다.

써놓은 대사를 소리 내서 읽어 보라.

유난히 멋지고 문학적인 대사를 썼다 싶으면 그 즉시 잘라내라.

사실 관객은 입술을 읽기 때문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더 이상 듣지 않는다.

긴 대사를 쓸 때에는 아주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인생은 대화이다. 행동이 있으면 반응이 있다.

삶은 언제나 작용과 반작용이다. 독백은 없다. 완벽하게 준비된 말도 있을 수 없다. 중요한 순간을 머릿속으로 제아무리 많이 연습해 두어도 실전은 즉흥적이다.

잘못 써진 대사에는 쓸모없는 말들, 특히 부사구 같은 수식어구가 문장에 길게 널려 있다. 그래서 이미 중반쯤에 의미가 전달되었는데도 관객이 뒤의 무의미한 말들까지 듣고 있어야 하고 그 사이에 지루해진다.

뛰어난 대사일수록 단속적인 문장이 되곤 한다. 단속적인 문장은 미결된 문장이다. 문장의 마지막까지 의미를 지연시켜 관객과 배우 모두가 문장을 끝까지 귀 기울여 듣게 만드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면 절대 대사로 쓰지 말라.

알프레드 히치콕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나리오를 다 쓰고 대사를 더 했으면 촬영할 준비가 된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의 첫 번째 선택은 이미지이다. 대사는 안타깝게도 부차적인 선택이다.

묘사, 시나리오 읽는 이의 머릿속에 영화를 집어넣어라.

시나리오는 문학의 모든 본질을 담고 있되 문학적이어서는 안 된다.

첫째로 묘사하려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인식해야 한다. 그런 다음 카메라로 담아낼 수 있는 것만 묘사하라.

생생한 글을 쓰려면 수식어가 줄줄이 딸려 있는 뭉뚱그린 명사나 동사를 피하고 사물의 직접적인 이름을 찾아라. 동사도 마찬가지이다. 움직임 자체에 특성을 부여해야 생생함이 전달된다.

요즘의 시나리오는 마스터 장면 시나리오로 안정되는 추세이다. 이야기 전개에 반드시 필요한 앵글들만 포함할 뿐 더 자세한 것은 다루지 않는다.

우선 작가는 이야기의 의식에 참여한 관객으로서 시각적이건 청각적이건 모든 이미지에 상징적으로 반응한다. 대상 각각이 선택된 데에는 본뜻 외에 다른 의미가 있다는 점을 관객은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그래서 모든 외연에 내포를 더한다.

이미지 조직 양식은 모티프를 활용하는 전략으로서 영화에 새겨진 심상의 한 범주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히 그러면서도 매우 다양하게 시각적, 청각적으로 반복되지만 동시에 대단히 미묘해야 한다. 잠재의식적인 소통 과정을 바탕으로 미적인 감정을 더 깊고 복합적으로 증폭시키기 위해서이다.

범주란 충분한 다양성을 지닐 만큼 폭넓은 물리적 세계에서 도출된 일종의 주제이다. 이를 테면 자연의 한 차원(동물, 계절, 빛과 어둠 등)도 일종의 범주이고 인간 문화의 한 차원(건물, 기계, 예술 등)도 범주인 셈이다. 범주가 성립되려면 꾸준한 반복이 필요하다. 한두 가지의 고립된 상징은 거의 효과가 없다. 하지만 일단 이미지들이 조직적으로 되풀이되면 그 효력은 대단하다. 다양함과 반복을 통해 이미지의 조직 양식이 관객의 무의식으로 스며드는 까닭이다.

관객이 의식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미지의 조직 양식은 외적 심상이나 내적 심상 중 하나를 통해 만들어진다.

영화 외부에서 이미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어떤 범주를 골라서 영화 내에서도 똑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게 외적 심상이다.

내적 심상은 영화 밖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범주를 골라 영화에 사용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이다.

이미지 조직 양식은 반드시 잠재의식적이어야 한다.

제 19장 작가의 방식

안에서 밖으로 글 쓰기

단개 별 개요

말 그대로 단계별 개요는 이야기를 단계별로 구성한 것이다.

한두 문장짜리 서술로  각 장면에서 일어나는 일과 전개되는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묘사한다.

각 메모 카드 뒷면에는 이 장면이 전체 이야기 구성에서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지 자기의 생각, 최소한 당시의 생각을 적어둔다.

트리트먼트

트리트먼트에서 작가는 인물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만 언급하고 대사는 절대 쓰지 않는다. 대신 작가는 보조 텍스트를 만들어 낸다. 말과 행동 밑에 감춰진 진짜 생각과 감정 말이다. 흔히 작가들은 인물의 생각과 심정을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써보기 전에는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다.

모든 인물들의 의식적, 무의식적인 생각과 감정이 다 담긴 보조 텍스트를 깔면서 모든 행동의 매 순간을 묘사하는 게 트리트먼트다.

시나리오

현명한 작가들은 대사 쓰는 일을 가능한 한 뒤로 미룬다. 성급하게 대사를 쓰면 창의력이 질식되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디어가 다 영화로 만들어질 만한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

맺음말

다른 무엇보다 상상력과 기술보다도 더 세상이 작가에게 요구하는 것은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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