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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_에릭 와이너 / 어크로스 출판사

neulvo 2021. 11. 23. 01:25

들어가는 말, 출발

철학은 지식 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사고방식,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무엇을'이나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

"왜 기다려야 하지?" 왜 삶이 골칫거리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 오늘, 바로 지금,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인생이 이끄는 대로 나도 철학자가 되면 안 되나?

1부 새벽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우리를 이불 속에서 끌어내주지 못한다면 철학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우리 모두 외부의 힘이 작용하길 기다리며 가만히 멈춰 있는 물체다.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자격을 빼앗을 것. 다른 사람은 나를 해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나를 해칠 수 없기 때문."

2.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질문은 일방향이 아니다. 질문은 (최소) 양방향으로 움직인다. 질문은 의미를 구하고 또 전달한다. 적절한 때 친구에게 적절한 질문을 묻는 것은 연민과 사랑의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질문을 무기로 사용한다.

볼테르가 말했듯,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대답이 아닌 질문을 보는 것이다.

멈춤은 실수나 결함이 아니다. 멈춤은 말을 더듬는 것도, 말을 가로막는 것도 아니다. 멈춤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잠시 유예된 상황이다. 생각의 씨앗이다. 모든 멈춤은 인식의 가능성, 그리고 궁금해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잘못된 양육을 비롯한 모든 악행은 악의가 아닌 무지에서 나온다.

"멍청한 질문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야."

좋은 질문은 문제의 해답을 찾게 할 뿐만 아니라 해답을 찾는 행위 그 자체를 재평가하게 만든다.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하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곧 행복하지 않게 될 것이다." 라는 말로 쾌락의 역설을 설명했다. 행복은 붙잡으려고 애쓸수록 우리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행복은 부산물이지, 절대 목표가 될 수 없다. 행복은 삶을 잘 살아낼 때 주어지는 뜻밖의 횡재 같은 것이다.

3. 루소처럼 걷는 법

자유는 걷기의 본질이다. 내가 원할 때 마음대로 떠나고 돌아올 자유, 이리저리 거닐 자유, 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말처럼 "변덕이 이끄는 대로 이 길 저 길을 따라갈" 자유.

자신의 저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루소는 자연 상태에 있는 인간이 "노동도 언어도 없이, 거처도 바라는 것도 의사소통도 없이, 타인에 대한 욕구도, 마찬가지로 타인을 해치고자 하는 욕망도 없이 숲속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한다.

루소는 우리가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많은 것이 사실은 사회적 관습이라고 믿는다.

상상 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역경을 만나면 자기 연민이나 절망에 빠지지 말고 그저 다시 시작하라.

4. 소로처럼 보는 법

먼저 이성주의 학파는 감각을 불신한다. 오로지 우리의 지력과, 그 지력이 가진 타고난 지식만이 동굴 안에 있는 우리를 빛으로 이끌 수 있다. 이성주의자인 데카르트는 코기토, 에르고 숨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느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또 다른 학파인 경험주의는 감각을 신뢰할 수 있으며, 오로지 우리의 감각을 통해서만 이 세상을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소로는 이런 인식론적 난제에 엮이길 거부했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신뢰할 수 있든 없든 간에 감각은 우리가 가진 전부인데, 최대한 잘 사용하면 되지 않나? 소로의 철학은 내가 보는 것이 곧 나라는 아웃사이드 인 철학이었다.

소로는 초월주의자로 간주된다. 철학 사조 중 하나인 초월주의는 다음 다섯 어절로 요약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하지만 소로는 보이는 것을 더욱 굳게 믿었다. 실재의 본성보다는 자연의 실재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그것을 어떻게 보는지뿐이다."

우리는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볼까?

보편 법칙을 너무 성급하게 끌어내지 말 것.

"관찰이 흥미로워지려면, 즉 중요한 의미를 가지려면, 반드시 주관적이어야 한다."

"현실은 너무나도 멋지다."

"내가 내가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5.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

모든 사람이 "전면적이고 불가피하고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다.

"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다."

"우리는 영화관을 떠날 수 없다. 영화관 바깥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리의 현실이다. 아무도 스크린을 보지 않을 때 영사기의 불빛은 꺼지지만 영화는 영사기에서 계속 돌아가고 있다."

관념론자들은 세계는 존재하지만 우리 정신의 구성물로서 우리가 그것을 인식할 때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의지의 욕망은 끝이 없으며 요구는 고갈될 줄 모른다. 모든 욕망이 새로운 욕망을 낳는다. 그 갈망을 가라앉히거나 그 요구에 끝을 맺거나 그 심장의 끝없는 나락을 채우기엔 세상의 그 어떤 만족도 충분치 않다.

오늘날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딜레마는 우리 인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지만 타인은 우리를 해칠 수 있다. 관계는 끊임없는 궤도 수정을 요하며, 매우 노련한 조종사조차 가끔씩 가시에 찔린다.

이 세계는 실제로 고통이자 엄청난 오류이지만, 그 고통이 일시적으로 유예될 때가 있다. 짧은 즐거운의 순간들.

예술 작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는다.

포르노는 예술의 정반대 지점에 있다. 포르토의 유일한 목적은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욕망을 자극하지 못하면 그 포로노는 실패작으로 여겨진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면 이 세계도 알 수 없다.

"가장 최근에 쓰인 것이 늘 더 정확하다는 생각, 나중에 쓰인 것이 전에 쓰인 것보다 더 개선된 것이라는 생각, 모든 변화는 곧 진보라는 생각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

"정보는 그저 통찰로 향하는 수단일 뿐이며, 정보 그 자체에는 거의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2부 정오

6.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낯선 이여, 이곳에서 당신의 시간은 즐거울 것이다. 이곳에서의 최고선은 쾌락이다."

에피쿠로스는 정치적 유대가 자족의 가능성을 낮춰 결국 행복을 외부에 위탁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에피쿠로스의 모토는 라테 비오사스, 즉 '숨어사는 삶'이었다.

"삶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마라. 만약 그 성취가 네 이웃에게 알려진다면 그 때문에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경험론자였다. 그는 우리의 감각을 통해, 오로지 우리의 감각만을 통해 세상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감각이 완벽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밖에 다른 믿을 만한 지식의 원천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와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착각을 한 것이거나 무언가를 팔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해롭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욕망한다는 것이었다.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반사적인 행동이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규정했다. 우리는 존재의 차원에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긍정 정서의 차원에서 쾌락을 떠올린다. 반면 에피쿠로스는 결핍과 부재의 측면에서 쾌락을 규정했다. 그리스인은 이러한 상태를 아타락시아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를 만족으로 이끄는 것은 어떤 것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불안의 부재다.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 에피쿠로스는 향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평정주의자'였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은 명성이나 부가 아닌 마음의 평화, "존재하는 데서 오는 순수한 기쁨"이다.

"우리는 오직 딱 한 번 태어난다. 두 번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인간의 삶이 우연의 결과물, 원자 운동에서의 일탈, 일종의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삶을 찬양해야 하지 않을까?

이게 다 당신이 불필요한 욕망을 필요한 욕망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것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

에피쿠로스는 어느 시점이 지나면 쾌락은 더 증가할 수 없으며 그저 다양해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게으르거나 결점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추론을 잘못한 것일 뿐이다.

7.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속도는 조급함을 낳는다.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은 삶의 속도와 반비례하여 줄어든다. 조급함은 미래를 향한 탐욕이다. 인내는 시간에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지금 당장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

사람은 자신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한다.

배유에게 관심은 용기나 정의와 다르지 않은, 똑같이 사심 없는 동기가 요구되는 미덕이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더 훌륭한 노동자나 부모가 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지 말 것. 그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이유에서 관심을 기울일 것.

관심은 사랑이다. 사랑은 관심이다.

"불행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 관심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진정한 관심이라면 그저 타인의 존재를 인지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인정하고 공경해야 한다.

"모든 문제는 수동성의 결여에서 생겨난다."

관심은 우리가 행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동의하는 것이다.

"소극적인 노력"

"우리가 가장 귀중한 선물을 얻는 것은 그것을 찾아 나설 떄가 아니라 그것을 기다릴 때다." 관심의 반대말은 산만함이 아니라 조급함이다.

우리가 종종 너무 서둘러 판단을 내리듯이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는 데도 너무 성급하다. 어떤 대상이나 생각에 너무 빨리 혹하고, 그 대가를 치른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아름다움이나 친절한 행동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베유는 알지 못하는 상태, 생각하지 않는 상태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모든 부주의는 이기심의 한 형태다. 우리는 그게 무엇이든 간에 자기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나머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보다 더 흥미롭고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나르시스트들이 그토록 부주의한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억눌려 있고, 정체되어 있다. 관심은 우리 삶의 피다. 피는 잘 돌아야 한다. 관심을 썩히는 것은 곧 삶을 죽이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이 향하는 대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문제인 것은 그 주체, 즉 '나'다.

"문제는 늘 우리가 너무 적극적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수색에 나서고 싶어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대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다. 오로지 간접적인 방법만이 효과가 있다. 우선 한발짝 물러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언가에 온전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그의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베유는 말한다.

8. 간디처럼 싸우는 법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싸우느냐가 중요하다.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그곳에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하다.

<바가바드기타>의 또 다른 교리는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의 화신인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겐 노력할 권리가 있지만, 반드시 그 노력의 결실을 취할 권리는 없다. 절대로 보상받기 위해 행동에 나서지 말 것이며,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라서도 안 된다." <바가바드기타>는 노력과 결과를 분리하라고 가르친다. 모든 시도에는 100퍼센트의 노력을, 그 결과에는 정확히 0퍼센트의 노력만을 기울일 것.

9. 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

공자는 "나는 여색을 좋아하는 만큼 덕을 좋아하는 자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라는 말을 남기고 13년간 이어질 방랑을 떠났다.

"삶도 아직 다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말하겠느냐?"

'인간다운 마음'

인을 실천하는 사람은 공경과 아량, 신의, 민첩함, 친절이라는 다섯 가지 기본 덕목을 항상 실천한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한 생명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으면 모든 생명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다.

10. 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순식간에 사라지는 삶의 작은 기쁨을 즐기려면 느슨하게 쥐어야 한다."

쇼나곤은 "붓 가는 대로 따라간다"는 뜻의 즈이히츠를 하고 있다.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고, 자기계발서들은 조언한다. 이런 접근법은 우리가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목적지를 파악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인생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가끔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니 움직일 것, 지금 있는 곳에서부터 움직이기 시작할 것. 일단 붓을 들고 붓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볼 것.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그 불확실성이다."

"아름다움은 덧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이런 불완전함을 향한 사랑을 일본인들은 와비라고 부른다.

어떤 것이 자신의 선택임을 깨닫는 것은 더 나은 선택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일하는 동안 곁에 두기 위해 처음으로 작은 꽃을 꺾은 사람은 인생의 기쁨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다."

어쩌면 삶에서 흔히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작은 것들의 위대한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할 수도 있다. 어쩌면 구원은 보기보다 가까울 수 있다. 우리가 해야하는 건 그저 손을 뻗어서 문을 닫는 것뿐이다.

3. 황혼

11.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존재의 영원한 모래시계는 끝없이 다시 뒤집힐 것이다. 그 안에 있는 모래알 중 하나인 너 자신도!

"어떤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부서지고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옥은 실재하지 않을 수 있지만 지옥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의 행동 동기가 된다.

나는 정말로 이 불행한 삶을 영원히 반복해서 살고 싶은가? 솔로몬에게 이 생각은 특히 끔찍한 지옥으로 느껴졌다.

당신의 삶은 정확히 똑같이 반복된다.

"얼마나 비참할지 생각해봐. 무한 루프에 갇히는 거야. 다들 살면서 커다란 실수 하나쯤은 해. 난 아직 안 했지만, 언젠간 하리란 걸 알아. 그 실수를 계속 반복한다고 상상해봐. 아니면, 도끼 살인마한테 살해된다고 상상해봐. 그걸 계속 반복하고 싶어? 만약에 암에 걸리면? 그걸 되풀이하고 싶어?"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사랑하지 말라고, 바로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사랑하라고, 니체는 말한다.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영원히. 우리는 모두 시시포스다. 신이 내린 형벌로 영원히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렸다가 그 바위가 다시 굴러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가여운 그리스신화 속 인물.

보통 우리는 불확실성에서 도망쳐 확실성을 향해 달려간다. 니체는 그것이 불변의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가치이며,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것은 재평가가 가능하다.

12.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는 법

흔히들 아는 스토아학파의 권고는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바람에 수없이 시달리지 않은 나무는 땅에 튼튼하게 뿌리박지 못한다. 바람에 흔들려야 땅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고 아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은 덕을 함양할 수 있느 기회다."

우리는 자기 운명의 통제권을 갖는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스토아철학은 이처럼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과 성과를 "무관한 것"이라 칭한다. 이런 무관한 것들은 우리의 인성이나 행복에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무관한 것들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러므로 스토아철학은 무관한 것들에 '무관심'하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몸이 아픈데도 행복하고, 위험에 처했는데도 행복하고, 죽어가고 있는데도 행복하고, 나쁜 평판을 듣는데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내게 보여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게 데려오라! 신들의 이름으로, 그렇다면 나는 스토아 철학자를 보게 될 것이다!"

롭은 고통스러웠지만 삶이 다르게 흘러가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고통을 더하진 않았다.

철학은 "우리 자신의 나약함을 의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삶의 많은 것들이 우리의 통제 바깥에 있지만,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지배할 수 있다. 바로 우리의 생각과, 충동, 욕망, 혐오감, 즉 우리의 정신적, 감정적 삶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자신의 행복을 타인의 손에 맡긴다.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리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그들의 판단이다."

우리 생각과 행동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듯 우리의 감정에 대한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 감정은 우리가 내리는 판단의 결과이며, 이 판단은 틀린 경우가 많다. 우리가 잘못 이해했거나 갈피를 못 잡는다는 뜻이 아니다. 스토아학파는 그런 판단이 말 그대로 실제 경험과 다르다고 말한다.

이 부정적인 최초의 정념을 존중하고 증폭시키기를 선택할 때마다 우리는 불행하기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여라."

몸이 경험한 것을 마음이 경험하고 증폭시키도록 두지 않았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라."

때때로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들을 스스로 거부함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에 더욱 감사하게 되고, 덜 얽매이게 된다.

기쁨을 포기하는 것은 삶에서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다.

'최악의 상황에 대한 예상'

운명에 체념하지 마라. 운명을 그저 받아들이지 마라. 운명을 사랑하라. 운명을 욕망하라.

13.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계속 타오를 것임을 믿는 것."

우리는 노년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내가 여전히 나이면서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보부아르는 궁금했다.

우리는 나이 들수록 더 강렬한 형태의 자기 자신이 된다.

사실 우리는 노화에 대해 별 생각을 안 한다. 젊음을 유지하는 것만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나이 듦의 문화가 없다.

노화는 연속체이며, 우리 모두 그 연속체 위에 있다.

"나이는 그 무엇의 원인도 아니다."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시간이다. 시계 속의 분, 달력 속의 달이다. 카이로스는 딱 맞는 적절한 때를 의미한다. 무르익은 기회다.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뒤얽혀 있다. 우리는 타인이 자유로운 만큼만 자유롭다.

"본성이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처럼 우리는 "자유를 선고받았다."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는데, 진정으로 자유롭다면 자기 불행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스스로 져야 하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개념의 사랑이란 없으며, 오로지 사랑하는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스스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 말 것, 스스로를 그려나가기 시작할 것.

사실성은 또 다른 실존주의 용어다. 사실성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는 삶의 요소를 의미한다.

보부아르가 보기에 노화는 타인이 내리는 문화적, 사회적 판결이었다.

"좋게 나이 드는 건 자유에 더 가까워지는 거야. 나쁘게 나이드는 건 죽음에 가까워지는 거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투이며 ,어쩌면 가장 중요한 기투일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반쯤 잠든 채로 인생을 살아간다. 우리는 사회적 역할과 자신의 본질을 혼동한다. 사르트르는 우리가 "타인에게 사로잡혀 있"으며 타인의 시선대로 스스로를 바라본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유를 박탈당했으며 진정성이 없다.

과거는 현재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보부아르는 풍성한 과거가 없는 현재의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만약 우리가 지나온 세계가 황폐하다면 음침한 사막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최대한 많이, 최대한 오랫동안 즐겼다."

14. 몽테뉴처럼 죽는 법

몽테뉴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 모든 지혜와 이론의 핵심은 결국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죽음을 주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

"내가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기까지의 과정이다."

크세주 Que sais-je, '나는 무엇을 아는가?'

에세이는 스스로를 더 잘 알기 위한 시도다.

몽테뉴는 죽음을, 자기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직면하지 않고선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장화를 신고 즉시 떠날 준비를 해야만 한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른다 해도 걱정하지 마라. 때가 되면 자연이 전부 다 제대로 알려줄 것이다. 자연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놓을 것이다. 괜히 걱정하지 마라."

"새로 시작되는 매일매일이 너의 마지막 날이라고 확신하라. 그 뜻밖의 시간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니."

나오는 말, 도착

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다. 그 생각을 좋은 생각으로 만들면 되지 않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인생에서 길을 잃는 수많은 순간마다 이 철학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다”《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을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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