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작은 책장

[독후감] 그리스 신화 영웅 이야기_스티븐 프라이 / 현암사

neulvo 2021. 9. 5. 00:43

이전 독후감에서 쓴 올림포스 신 이야기에 이어서

영웅 이야기에 대해 써볼까 한다.

 

사실 한창 자소서 쓰는 중인데

머리 좀 식혀볼 겸 ㅎㅎ

 

목차를 들여다보면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벨레로폰,

오르페우스, 이아손, 아탈란타, 오이디푸스, 테세우스의 이야기로 책이 구성되어있다.

 

거두절미하고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가져와 보겠다.

 

운명대로 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는 프로메테우스의 말에

헤라클레스는 이와 같이 대답한다.

 

"저도...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오, 어떻게 제가... 하지만 그런 삶이 제 운명이 아니라는 걸

저도 알아요. 프로메테우스 님이나 신탁이 그렇게 말해줘서가 아니라, 느낌이 그래요.

저는 제 능력을 알아요. 그걸 거부하는 건 배신이겠죠. 제 자신을 증오하면서 생을 마칠 겁니다."

 

그리고 이에 프로메테우스가 말을 받아친다.

 

"이거 보라지? 과업을 짊어진 영웅 헤라클레스는 자네의 운명이지만, 자네의 선택이기도 하다네.

자네가 그 운명을 감수하기로 선택한 거야. 이게 바로 삶의 역설이지.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걸

우리의 의지로 받아들이니까."

 

위의 부분에서 대화 부분은 그대로 적어 옮겼고 해설 부분은 직접 작성하였다.

 

이 부분이 왜 인상 깊었냐면

바로 이 부분에서 운명에 대한 통찰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선 모두가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다.

태어남과 동시에 그 역할과 끝이 정해진다.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가

인생의 길이를 정하고 운명을 분배하고 그 끝을 정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이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모두가 이 운명에 순응하는 것은 아니다.

또 모두가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는 것도 아니다.

 

운명이란 건 직감하기 어려운 것이며

설령 안다고 하여도

그걸 받아들인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런데도 헤라클레스는

위의 프로메테우스와의 대화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운명을 어렴풋이라도 짐작하고 있었으며

프로메테우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신의 의지로 받아들인다.

 

사실 처음에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이라고 썼다가

자신의 운명을 회피하려 한 영웅도 있었고

운명에 한탄하여 자신의 눈을 찌른

영웅도 있었기 때문에 헤라클레스로 특정하였다.(TMI)

 

운명대로 살지 않고 자유롭게 여생을 보내도 된다는

프로메테우스의 조언에서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운명이

고되고 가혹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운명을 받아들였다.

 

헤라클레스가 그 끝을 모른다고 하였을지라도

여러 번의 과업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운명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 정돈 알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헤라의 노여움도 사고 있었으니.

물론 내 짐작이기는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알았을 것이다.

 

자신의 운명이 가혹한 것임을 알아도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말이 쉽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헤라클레스는 영웅이다.

 

그리고 약간 다른 이야기인데

나라를 위해 싸웠던 모든 분들의

마음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도 받아들인다는 것은 힘들다.

그리고 그 운명이 비극이라면 더욱.

 

그런데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게

정말 프로메테우스의 말처럼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것의 증명일까?

 

비극일 수도 있는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게

의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니

너무나도 가혹하게 느껴진다.

 

분명 힘겨운 선택일 텐데

그 또한 운명이고

의지가 없다는 것의 표명이라면

분명 허탈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받아들이는 것일까?

 

모르겠다.

 

운명이란 너무나도 어려운 얘기이다.

삶의 목적이 주어져 있다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목적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니까.

또 삶에 개척할 만한 여지가 없다고도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프로메테우스의 말처럼

의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볼까 한다.

 

나의 경우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나는 스스로에게 의지가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의지의 선택권이

많지는 않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선택권을 크게 분류해보자면

주어진 상황에 몰입하느냐

주어진 상황에서 회피하느냐

의 두 가지 갈래인 것 같다.

 

어쩌면 주어진 상황에 몰입하는 것이

운명대로 살아가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운명이 무엇인지는 모르니까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고 보니 헤라클레스도 다른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도

주어진 상황에 항상 충실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운명대로 살게 된 것일까?

 

운명을 알 수는 없으니까 짐작만 하고 있다.

 

운명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사는 게 운명을 따르는 것인지

운명을 거스르는 것인지도 정확히 알기는 힘들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아까 얘기했듯이

주어진 상황에 몰입하는 것이

운명을 따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주어진 상황에서 회피한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까

그걸 운명대로 산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또 나는 성향 상

상황들을 만들기보다는

주어진 상황들에서 최선을 다하는 편이니까

의지로 어떤 상황을 만든다는 것은 잘 모르겠다.

 

무언가 많이 한 것 같아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 나는 주어진 상황을 수용하고

거기에 몰입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운명을 개척하면서 운명대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개척과 순응은 다른 것 같아도 접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

 

회피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우리는 결국 받아들여야 하고 나아가야 한다.

 

책에서 프로메테우스와 헤라클레스의 대화를 읽고

나는 한동안 운명에 대해 고민하고 선택들을 내렸다.

 

그리고 내 선택은 항상

운명에 순응하면서

운명을 개척하는 쪽이었다.

 

이유는 그 편이 새로운 가능성이 더 많고 더 재밌을 것 같으니까 이다.

비극이 주어진다면 그땐 고민 좀 해봐야겠지만 아직은 고민할 때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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