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작은 책장

[독후감] 형이상학 서설_임마누엘 칸트 / 아카넷

neulvo 2021. 9. 12. 20:55

출판사인 아카넷의 사이트가 따로 있지만

그 안의 링크가

네이버로 타게 되어 있어서

부득이하게 네이버 링크로 올린다.

 

어릴 적부터 철학에 관심이 많아

칸트의 저서들을

언젠가 꼭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대학생 때인가 이 형이상학 서설과

순수이성비판 1을 구매했었는데

형이상학 서설은 졸아가면서 읽었고

순수이성비판 1은 펴 보지도 못한 채 책장 안에 박제해 두었다.

 

그러다가 이번 기회에

형이상학 서설부터

다시 한번 읽어보자 라는

생각이 들어 읽기 시작했다.

 

형이상학 서설을 다 읽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많이 걸려서

과연 그의 저서들을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 시작을 했으니 언젠가 끝을 보겠지.

 

독후감 업데이트 속도가

정말 느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럼에도 형이상학 서설을 읽으면서

내 자신의 철학도 체계를 잡고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모든 저서들을 읽고 난 후에는

작업 속도가 느린 것에 대한 확실한 보상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그 보상으로는

내 철학의 확립을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형이상학 서설 및

칸트의 저서들을 읽은 바를

기반으로

틈 날 때마다 작업을 쌓아갈까 한다.

 

현재 취준생이기도 하고

현생을 살아가기도 해야 하니까

생각보다 작업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겠다.

 

후에 작업물을 책으로 만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글을 접하게 될 누군가에게

영감을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

 

형이상학 서설, 이 책은

순수이성비판 후에

순수이성비판의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온 책이다.

 

괴팅겐 서평에 대한

그의 비판(?)을 보면

독자들을 위한 자상한 배려라기보다는

자신의 철학을 주창하기 위한 수단의 느낌이 강하다.

 

책의 내용을 모두 포괄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주된 내용인 경험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한다.

 

"순전한 순수 지성 내지 순수 이성에 의한

사물에 대한 모든 인식은

순정한 가상일 따름이며,

오직 경험 중에만 진리/진상이 있다." (p. 330)

 

칸트는 경험으로 얻은 인식만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사물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얻을 수 없다고 보았다.

 

위에서는 표현 그 자체를 가져왔지만

아래의 해설 부분은

편의를 위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어떠한 오해도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칸트의 철학 그리고 이 형이상학 서설의 내용 중에서

가장 크게 공감한 부분이 이 부분이다.

 

대저 우리가 경험하는 것 외에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경험을 확장시켜

일반적으로 타당한 객관을 꾀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경험으로부터 떼어내질 수는 없는 것이다.

 

경험에서 벗어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경험에 대한 생각 중에서

칸트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하는

두 부분이 존재한다.

 

바로 '선험적'과 '초험적'이다.

 

칸트는 선험적인 것을

경험에 앞서, 경험하는 의식에 예비되어 놓여 있는 것으로 보고

공간, 시간 표상과 범주로서의 순수 지성 개념을

선험적이라 하여 경험에 관한 인식의 변화를 꾀했는데

 

나로서는 선험적이라는 말부터가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모두가 경험에서부터 비롯하는 것인데

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들이

과연 경험과 떨어져서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다시 말해, 시간과 공간 또한 경험의 일부이고

우리가 그것의 존재를 경험으로부터 인식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형식으로서 경험 이전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시간과 공간이 특수성을 가지고

종합적 인식인 경험 인식의

다른 부분들과 다르다는 것은

경험 너머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상함에서 비롯된 착각이다.

 

시간과 공간은 경험에서도

그리고 감각에서도 분리될 수 없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타인 그리고

그 너머에 까지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그러한 착각에 빠진 것이다.

 

또 다른 선험적이라 얘기하는 것,

범주로서의 순수 지성 개념에

대해서도 얘기하자면 이는

종래에 관습적으로 갖고 있는

이데아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경험으로부터의 총괄인 개념을

초험적 세계로 던진 것, 그것이 이데아이다.

 

난해한 것을, 알 수 없는 것을

설명해줄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경험으로부터 경험 밖의 것이라 생각되는 것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경험으로부터 경험 인식 밖의 것을 도출하는 것은 오류다.

 

경험 밖의 무엇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경험으로부터 도출해낼 수 있단 말인가?

 

'초험적' 이라는 말 자체가

오류를 내포하는 말이란 것을 여기서 알 수 있다.

 

경험 밖의 것은 모두 미지의 것인데

우리는 어떻게 그 미지의 것을

경험으로부터 알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추측에 불과한 것이지

확실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추측 또한

경험 밖의 것이 경험 세계의 것과

유사성을 가진다는 전제가 없고서야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초험적이라는 말은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형이상학 서설을 통해 접하게 된

경험에 대한 칸트의 철학은

인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계몽적인 것이었으나

초험적인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모종의 아쉬움을 남겼다.

 

미지의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인정하지만

처음의 대전제,

오직 경험 중에만 진리/진상이 있다.

에서 벗어났으면 안됐다.

 

이제 마치기 전에 책에 대해 잠깐 얘기해볼까 한다.

 

덧붙임 2의

칸트 철학에서 '선험적'과 '초월적'의

개념 그리고 번역어 문제 부분을 읽으면서

 

이를 연구하는 데 그리고 책을 쓰는 데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고가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눈앞에 준비된 만찬을

즐기는 일밖에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칸트의 책을 그리고 생각을

이렇게 섬세한 배려 속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감사한 일이다.

 

그 노고가 보답을 받았기를 바라면서 마치고자 한다.

 

감사합니다.

 

형이상학 서설

칸트의 3비판서인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이성비판』 중 칸트 스스로가 『순수이성비판』의 핵심 내용을 간추려 쉽게 쓴 책이다. 『순수이성비판』은 인식론에 기반을 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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