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여행기/Europe_2013_여름

정열과 휴양의 섬, 이비자(Ibiza)

neulvo 2021. 5. 3. 21:40

프랑스 파리 다음의 여행지는 이비자였다.

몇 가지 먼저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이비자의 한 골목

첫째로, 나는 파리에서 낭만이란 단어를 쓰면서

이전에는 쓰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노르웨이에서 썼더라.

내가 낭만을 많이 좋아하나보다.

다음부턴 단어 선정을 좀 더 신중히 해야겠다.

 

둘째로는 양해의 말인데

내가 이비자에 있을 때 사진을 별로 안 찍었더라.

괜한 오해를 사는 게 싫었다곤 해도

이렇게까지 안 찍었을 줄은 몰랐다.

기억나는 대로 글이나마 써볼까 하는데

현지 사진을 기대하고 이 글을 클릭했다면 죄송...

 

마지막으로는 앞서 말한 괜한 오해에 관한 거다.

내가 클럽에 가 본 횟수는 손에 꼽을 수 있는데

그 중 이비자에서만 두 번이고

첫 클럽 방문이 이비자 클럽이었다.

이비자가 클럽으로 유명하다길래

호기심이 돌아서 유럽 여행을 하는 김에 방문했다.

이비자를 갔다는 거 하나로

나를 판단하지 말아줬음 좋겠다.

 

그렇다. 나는 이런저런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아무튼, 이제 할말도 다 했으니 슬슬 얘기를 시작해볼까?

이비자에 대한 기억은 비행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왜냐하면 옆에 앉은 사람이

가족 여행으로 이비자를 간다고 설렌다고 나한테 얘기했거든.

그래서 그때 응? 뭐지? 이랬던 기억이 난다.

 

나는 유명인들 놀러 가고 클럽 있고 이런 걸로 생각했는데

옆에서는 가족 여행을 간다고 그러니까

뭐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하면서 벙쪘었다.

 

이비자에는 저녁 늦게 도착했다.

공항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나는 그때 택시를 불렀나?

아, 숙소에 연락해서 셔틀같은 걸 보내달라 했었다.

중간에 다른 손님도 태웠던 기억이 있는 걸 봐선

셔틀이 맞는 것 같다. SUV 느낌의 차였다.

차는 모래가 깔린 비포장 도로를 달려 숙소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첫 날은 귀중품을 어떻게 하면 잘 보관하지

궁리를 하면서 밤을 보냈다.

집에 잘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다음 날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조식을 먹고

바다로 나갔다.

누드 비치는 아니었고

그냥 비치였는데 헤엄치는 게 좋아서

이비자에 있는 동안

거의 매일 아침 헤엄치러 나갔었다.

 

아직도 해변 뷰는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 같다.

나는 바다가 좋다.

 

그런데 사실 바다에서 놀지 않으면

진짜 할 게 없었다.

이비자도 계획 없이 가서

클럽을 간다 외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바다 가고

숙소에서 쉬고

거리 돌아다녀보고 그 정도가 전부였다.

 

이비자도 거의 체험판이었네.

어려서 그랬던 것도 같고

혼자 가서 그랬던 것도 같다.

지금 보니 여러모로 아쉽네.

 

무려 2013년!

암네시아 클럽의 티켓이다.

아마 숙소에서 샀던가 그랬던 것 같다.

거기서 만난 일행과

티켓을 같이 끊었다.

 

암네시아는 꽤 먼 곳에 떨어져 있어서

버스를 타고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버스에서도 클럽 음악이 나와 흥을 돋우었지.

저녁에 미리 잠을 자 놓아서 말똥말똥한 상태였다.

 

암네시아는 거품 파티로 유명한 곳인데

그걸 경험하기 위해서 방문했다.

 

그런데 정말 느낌이 색달랐다.

새로운 세계에 온 느낌이었다.

조명도 조명이고 사람들이 신나서

몸을 흔드는데 정말 나도 덩달아 신이 나더라.

 

사진이 왜 진짜 없을까...

나는 뭐 한거지?

너무 너무 아쉽다.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건 남자 스트리퍼가

어느샌가 난간을 붙잡고

춤을 막 췄던 장면이다.

근육들이 너무 꿀렁거려서

뇌리에 안 박힐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한텐 좀 부담스러웠다. 과했다.

다른 사람들은 좋아서 소리 지르더라. ㅎㅎ;;

 

거품은 거의 새벽 세시? 네시? 돼서야 나왔다.

진짜 무슨 풀장처럼

온 플로어가 비누 거품으로 뒤덮였는데

그거 던지고 노는 게 꽤나 꿀잼이었다.

나는 주변에 무차별 난사했다. ㅋ

그리고 또 많이 당했다. ㅠ

 

그렇게 재밌게 놀고

마지막 음악으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듣고

비눗물에 흠뻑 젖은 채로 클럽을 나왔다.

강남 스타일이 엄청 유행했던 때라

나도 국뽕에 취해있었다. 재밌었다.

 

자고 그 다음날 바로 파챠를 갔다.

와 씨, 티켓 너무 비쌌다.

그렇다. 무려 데이비드 게타가 온 날이었다.

데이비드 게타의 노래는 몇 번 접한 적이 있었다.

edm 음악을 잘 모르는 내겐

데이비드 게타의 존재는 가뭄의 단비 같았다.

 

파챠는 비싼 만큼이나 퍼포먼스나 플로어가 화려했다.

들어가자마자 무슨 박스 같은 데서

스트리퍼들이 각자 춤을 추고 있었는데

뭐랄까 섹시하면서도 정말 멋있었다.

그네를 타는 사람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닌가? 이건 영화에서 본 건가?

정말 착각이 들 정도로 상상력이 끝내주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부비부비하고 그랬는데

데이비드 게타가 등장하자

모두가 그의 공연에 집중했다.

 

정말로 공연이라해도 무방한 게

플로어에 두건을 쓴 사람들이 줄지어 등장하더니

게타의 디제잉에 맞춰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응원봉이랄까

응원 방망이랄까

빛이 들어오는 응원 용품을 나눠 주었다.

 

그런데 나는 또 그걸 받아버렸지.

사람들이 달라고 막 손을 뻗는데

우연찮게도 내 손에 그 방망이가 들어왔었다.

 

그런데 옆을 보니까 왠 아저씨가

되게 서운한 표정을 짓길래

그게 안쓰러워 보여서 아저씨에게 방망이를 건네주었다.

 

그러더니 그 아저씨가 정말 좋아하더라.

천진난만한 아저씨였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좀 이따가 나를 부르더니

갑자기

나한테 자기 가족들을 소개시켜주었다.

 

이게 뭐지?

진짜 여기 가족 휴양지였나?

 

약간의 충격과 흥미, 설레임을 안고 나는

아저씨의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심지어 가족들이 꽤 많았다.

족히 6명은 됐던 것 같은데 정확힌 기억 안 난다.

 

아저씨는 또 나한테 고마웠는지

마실 거 사준다고 그랬는데

내가 굳이 뭐 마시고 싶지 않아서 거절하니

아저씨 가족들이

자기들이 마시던 거 맛보라고 건네줬다.

그걸 몇 모금 마셨는데

흠... 다행이었네.

아무튼 유쾌한 경험이었다.

 

그리고는 왠 이상한 대머리 아저씨가 나를

노려보길래

그 아저씨 피해다니면서 클럽 내부를 구경하다가

숙소로 터덜터덜 돌아갔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위험한 순간들이

많았던 것도 같다.

무사히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솔직히 이비자를 또 갈지는 모르겠다.

내 취향에 맞는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비자에서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한 걸 보면

내게 여러가지로 충격을 많이 주었던 건 확실하다.

어떤 식으로든 양분이 되겠지.

 

내 틀을 깨준 정열의 섬 이비자, 그것만으로도 가치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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