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살기/미술전 후기

[2024 / 예술의 전당]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neulvo 2024. 8. 5. 15:03

하비에르 카예하 전을 다녀온 뒤 시간이 꽤 남아서

아래 층에 있는 에드바르 뭉크 전시를 다녀왔다.

 

노르웨이에 있던 뭉크 전시관을

어릴 적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따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전시였다.

 

하지만 전시는 생각보다도 알찼고

잘 설명되어 있어

전시를 보고 난 뒤에,

전시를 관람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하면 절규 만으로 받아들이고 기억할 수 있는 뭉크를

그의 생애와 더불어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그의 예술을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초입 부분에 전시된 그의 자화상이다.

왼쪽은 유화로 오른쪽은 판화로 제작되어 있다.

오른쪽 그림 아래에 보면 해골의 뼈마디가 보이는데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을 담고자 했던 것 같다.

이후 마돈나 그림에서 이것과 유사한 오브제의 배치를 볼 수 있었다.

 

왼쪽의 자화상을 보면 깔끔하다기보다는

투박하고 언뜻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이 그의 스타일이자 매력이었던 것 같다.

 

정교하지 않고 투박하고 거칠다.

 

요즘의 내 생각과 약간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대상을 담는 것이 그것의 기술적 표현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잘 표현해야 하는 건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인식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나 싶다.

그리기 힘든 것에 대한 핑계일 수도 있다.

뭐, 이거는 내 이야기고

 

뭉크는 감정과 그 순간의 역동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고수했던 것 같다.

이 또한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난간 옆의 여인 그림.

그의 독특한 표현 기법인 '로스쿠어(Rosskur)'가 적용된 그림이다.

로스쿠어는 작품을 자연에 노출시켜

작품의 노화과정을 작품에 담는 극단적인 처리 기법인데

뭉크는 새의 배설물이나 곰팡이 낀 것 마저도 작품에 포함시켰다.

 

약간 극단적인 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작품이란 것도 사실 물건의 일종이니까

귀하게 다뤄야 한다는 건 집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뱀파이어 인어와 뱀파이어 시리즈다.

뱀파이어 시리즈는 판화로 제작되었다.

여자와 남자의 관계를

구속적이고도 성적인 관계로 인식했던 것 같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부각하고

남성이 그에 매료되고 구속되는 방향이다.

여성의 머리카락이 그의 성적 매력을 표현하고

남성을 구속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표정을 잃은 인간 군상에 대한 표현도 했었다.

아래의 절규 그림과 연관된 소재인데

산업화 시대의 가치 상실과 인간 소외

그리고 그에 대한 우울과 절망을 그림에 담았다.

 

그 유명한 절규 그림.

뭉크가 판화로 프린트를 한 뒤에

채색을 따로 하였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채색을 다 따로 하였기 때문에

작품 마다의 고유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또 새롭게 느껴졌다.

창작과 독창성, 오리지널리티는 정말 해석의 여지가 많은 것 같다.

통일된 시각이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이번 전시를 통해 판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병든 아이에 대한 그림.

가족사와 관련된 그림이라고 들었는데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이번 전시의 도슨트는 유료(3,000원)에다가

현장 기기의 충전 이슈로

현대 포인트 앱으로 들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내용이 충실해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뭉크는 말년에 스튜디오에 누드 모델들을 초대해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고 한다.

모델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해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 구축에도 노력했다고 한다.

 

절규 다음으로 파격적이라고 느꼈던 마돈나 그림이다.

이 또한 여러 버전이 있었는데

오른쪽의 어린 아이 그림은 조금 기괴했다.

개인적으로는 문화에 따른 정서의 차이가

이런 부분에서 느껴지는 것 같다.

 

여자와 남자가 나란히 서있거나 함께 있는 그림을 많이 그린 것 같다.

그만큼 관계에 대한 고찰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상징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달리가 생각나기도 한다.

 

뭉크는 목판화를 그리면서

나무도 신중하게 고르고 그 재질도 적극 활용했다고 하는데

오른쪽 작품에서 그런 노력이 잘 드러난 것 같다.

 

왼쪽 그림은 배신이라는 그림으로 

남녀의 삼각 관계를 담은 작품인데

그 구도를 잘 설정한 것 같다.

근대와 현대 사이 그 중간의 느낌이 든다.

물론 뭉크가 그때 사람이긴 하다.

영상 매체나 표현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오른쪽의 작품은 키스라는 작품으로

그의 작품에서 많이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다.

따뜻한 장면임에도 어딘가 쓸쓸한 느낌이 느껴진다.

 

또 다른 키스 그림.

호수에 비친 달빛의 표현이나

남녀의 키스 장면,

모두 자주 볼 수 있었던 표현이었다.

자주 쓰는 표현을 정형화시켜서 

의미를 부각하는 것도 작가의 역량인 것 같다.

 

뭉크는 참 투명하고 솔직했던 것 같다.

본인의 감정에 충실하기도 했고

표현하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

약간 지저분 했을 것 같은 느낌이 있는데

그건 작품에 드러난 한 면일 뿐이니까

집중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전시를 보며 든 감상을 아래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았다.

 

투박함으로 강렬함을, 투사하는 깊은 감정

 

감사하다.

 

에드바르 뭉크

2024-05-22(수) ~ 2024-09-19(목) <br /> 한가람미술관 제1전시실, 제2전시실<br />서울신문사, KBS미디어, 예술의전당

www.s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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