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살기/느린 미식가

느린 미식가 : 라미띠에 [L'AMITIÉ]

neulvo 2021. 4. 16. 14:16

내 어릴적 꿈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것을 모두 먹는 것이었다.

순수한 열망이었고 나름 진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에 돈을 벌고서 그 열망이 다시금 떠올랐다.

세상의 모든 맛있는 걸 먹자는 수준은 아니지만

돈이 있을 때 무리하더라도 맛있는 걸 먹자는 열망.

그리고 지금 즐길 수 있는 것을 굳이 뒤로 미루고 싶지 않다는 생각.

실제로 한 번 다녀오니 이걸 또 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격이 부담되기는 했다.

그래도 이 경험을 지금하는 것이 더 의미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먹는 것에 투자를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위치가 조금 찾기 어려운데

왠만하면 지도 앱을 키고

찾는 게 나은 것 같다.

아니면 집중해서 주위를 잘 둘러보자!

미안. 당연한 얘길 해서;;

 

서론이 길었다.

이제 라미띠에로 들어가보자.

 

라미띠에를 다녀와서 알고보니

라미띠에가 국내 최초의 부띠끄 프렌치 레스토랑이라고 한다.

왠지 처음부터 아다리가 딱 맞아들었다.

사진은 보정하지 않았고 보정할 생각 없다.

사진이 실물보다 못하긴 하지만 실물보다 과장하고 싶진 않다.

 

주문한 것은 런치 코스고

캐비어와 푸아그라를 추가했다.

둘 다 먹어본 적은 있었지만 제대로 먹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아 주문했다.

 

처음으로 서브된 것인 아뮤즈 부쉐, 한입요리.

테이블 담당 매니저 분이 서브하시면서 먹는 순서, 안에 들어간 재료 등을 설명해주셨다. 친절했다.

녹음하거나 받아적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언젠가 딱 듣고 기억할 정도로 미식에 익숙해지는 게 목표라면 목표다.

먹는 순서는 시계방향으로

카카오닢스 위에 얹어진 과자부터 검은색 슈, 그리고 유리잔에 담긴 농어(?) 샐러드와 비스킷까지였다.

전문가가 아니라 용어와 표현에 한계가 있는데 앞으로 나아질 것이다.

 

일단 카카오닢스에 얹어진 과자는 보는 것 자체로도 즐거움을 주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식감이 되게 부드러워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의도한 맛의 순서가 있을 텐데 아직 내가 부족해 그 의도를 모두 느끼진 못했다.

그래도 서술하자면 크림 같은 부드러운 맛과 고소함이 짧게 느껴진 다음엔

카카오닢스의 풍미가 입안에 맴돌아 오묘했다(?)라고 할 수 있겠다.

카카오닢스 맛이 쌉쌀한데도 진하게 입안에 남았던 것이 인상 깊었다.

 

두번째 슈도 입 천장과 혀를 맞대더니 그냥 목 안으로 넘어가버려서 아차! 싶었다.

미식에 신나서 긴장을 하지 않았던 걸까. 으... 뼈 아프다.

같이 간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버섯의 풍미가 입안에 퍼져 나오면서 입 안을 준비시키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세번째 아뮤즈 부쉐는 흰살 생선 샐러드와 그 위에 얹어진 베이크드 크러스트였다.

농어라고 들었는데 확실치 않아서 흰살 생선이라 했다.

생선은 회를 뜬 것을 크리미한 드레싱과 어린 풀을 섞어 뭉쳐서 제공되었다.

산뜻하고 식감이 좋았는데 샐러드에 섞인 어린 풀 덕인 듯하다.

생선 자체도 완두콩 사이즈(?)로 탱글한 질감이 느껴지면서도 먹기 좋은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생선 샐러드와 베이크드 크러스트 사이에

조금의 무게감을 더해줄 수 있는 크림층이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감상이 들었다.

아뮤즈 부쉐라 가벼운 느낌을 주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빵은 부드럽고 맛있었다.

 

그 다음이 캐비어와 감자 드누아.

진짜 이거 먹고 울컥했다.

눈물샘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거짓말이 아니다.

내가 예민하고 감정이 풍부한 탓도 있긴 하겠다.

캐비어와 드누아, 그리고 아래 거품이 일은 크리미한 소스까지 조화가 너무 좋았다.

진짜 짜릿한 맛이었다.

위에는 다져진 새싹과 계란 노른자가

질감을 다양하게 만들어주었다.

친구는 감자가 층층이 쌓여진 게 식감을 부드럽고 풍성하게 만든 것 같다라고 했다.

정말 일주일에 4~5번은 먹고 싶다.

 

그 다음은 쭈꾸미 아스파라거스 샐러드.

보기만해도 싱그러워 지는 디쉬.

샐러드들이 어우러진 식감이 좋았고 아래에 깔린 아스파라거스 소스의 두터운 맛,

그리고 유자의 상큼하면서도 맛의 경도를 한층 높여주는 맛이 너무 좋았다.

검은색 튀김(?)이 전해주는 재미도 일품이었다.

복합적이면서도 섬세한 디쉬에 정말 요리를 잘하는구나. 하고 벙쪘다.

 

가리비와 단새우가 들어간 샐러리악 스프다.

스프 안에 단새우와 가리비가 잠겨 있었고 초록색 거품과 감태가 위에 올라갔다.

크림 스프 자체는 짠 맛이 돌지만 부담스러운 느낌은 아니었다.

샐러리악 자체를 먹어본 적이 없어 그 맛에 대해 얘기할 순 없지만

다른 크림 스프에 비해 가벼운 느낌이었다.

스프와 단새우의 단짯만의 조화는 인상 깊었다.

단새우의 은은한 단맛과 찢어지는 결이 좋았다.

관자의 경우 매우 부드럽게 조리되었는데 오히려 구운 것처럼 그 식감이 뚜렷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원했던 사이즈보다 크기도 했다.

 

계절 생선 요리. 병어 요리다.

병어 자체에 특별함은 없었다. 향기나 맛이 다른 흰살 생선과 구분될 정도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요리가 섬세하게 조리된 탓인지 그 질감은 인상적이었다.

부드러운 옷감이 포개지는 느낌이랄까 살을 푹 뜰 때의 느낌이 좋았다.

겉면의 크리스피함도 단연 좋았다.

아래 조와 잡곡들이 생선과 함께 어우러지는 식감이 매우 재밌고 기분 좋았다.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디쉬의 앙상블이 상상해본 적 없는 구성이었다.

너무 칭찬 일색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라미띠에에서 주는 이 경험들이 너무 감명깊었다.

 

푸아그라 요리.

와.

그냥 와였다.

포트 하우스 와인 소스를 얹은 푸아그라.

옆에 가니쉬로 얹은 소스는 이름이 잘 기억 안난다.

와인 소스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산미를 무겁게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푸아그라의 크리스피한 식감과 소스의 단맛이 인상 깊었는데

크림브륄레가 갑자기 떠오르는 그런 느낌이었다.

푸아그라는 이게 정말 간인가?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크림 같았다.

간에서 느껴지는 풍미가 좋았다. 소 간의 풍미랑 비슷했다.

 

다음은 고기 요리인 이베리코 목살 요리.

클래식한 느낌이었다.

위에 올라간 양송이나 휴지처럼 돌돌 만 당근이 창의성을 보여주긴 했지만

전반적인 느낌은 클래식했다.

오히려 클래식해서 좋았다? 코스 구성에 무게감을 더해 준 느낌이었다.

당근이 작지만 상당히 상큼했는데 자칫 느끼할 뻔한 접시에 방점을 찍어준 느낌이었다.

매쉬드 포테이토를 간간히 떠먹는 즐거움이 있었다.

 

디저트.

하얀 크림 위에 딸기와 패션 후르츠로 만든 물방울 모양의 구체가 올라갔다.

그리고 옆에는 쑥 향이 나는 소스로 점을 찍어놨다.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부드럽고 산미와 단 맛의 조화가 너무 좋았다.

역시 디저트가 클라이막스구나 싶었다.

친구는 패션 후르츠의 상큼함이 충격적이라고 하였다.

 

마지막 한입 과자.

벚꽃 맛의 마카롱, 크림이 가운데 들어간 커스타드 느낌의 과자, 모과 과자.

과자들은 단맛이 적당한 정도였고 가운데 커스타트 과자는 그림과 겉의 과자의 촉촉함이 잘 어우러졌다.

부담스럽지 않게 커피와 즐길 수 있는 세팅이었다.

가운데가 피낭시에인가 친구는 매우 라이트하면서도 맛과 텍스쳐가 압축적인 것 같다 평했다.

 

후기.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좋은 곳이었고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또 음식이 나오는 동안 친구와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카페를 같이 자주 가긴 해도 이렇게 느린 템포로

대화를 음미하듯 한 것은 적었던 것 같다.

색다르고도 좋은 경험이었다.

좋은 경험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너무 감사했다.

친구도 나와 같이 감사함을 느껴 더 기분이 좋았다.

 

사실 이 글을 올리는 게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다.

아무래도 이렇게 비싼 음식을 먹는 게 아직은 나조차도 쉽지 않달까.

의도한 것과 다르게 받아들여질까 걱정이다.

나는 스스로를 객관화시키는 버릇이 있는데

그러다보니 걱정이 앞설 때가 있다.

하지만 뭐, 내 사고 방식과 행동을 관철해야지.

아무리 돈이 든다해도 아무리 돈이 없다해도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돈을 최대한 적절하게 쓰고 싶다.

그리고 이 경험에서는 그것이 성공했다고 기탄없이 말할 수 있다.

 

코스의 가격은 1인 기준, 16만 5천원.

캐비어와 푸아그라가 포함된 가격이다.

 

국내 최초의 부띠끄 프렌치 레스토랑 라미띠에.

나에게도 최초이고 또 방문하고 싶은 감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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