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살기/느린 미식가

느린 미식가 : 롯데호텔 모모야마 / 디너 오마카세

neulvo 2021. 4. 26. 15:21

정말 큰 맘 먹고 지른 모모야마 디너 오마카세.

백미는 전경이었다.

서울이 이랬구나.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날씨가 좋았던 탓도 있었지만

날씨가 안 좋았어도 전경은 그대로 훌륭했을 것 같다.

마음 아픈 일이 있어 하루종일 방황했는데

전경의 아름다운 모습에 조금 위안을 받았다.

 

위치는 을지로입구역 롯데호텔!

 

테이블에 앉기 전부터 서비스가 정말 좋았다.

여태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

그 세계를 향한 문이 모모야마에서 열리는 것만 같았다.

 

아! 한 가지 미리 얘기하자면

식재료는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적었다.

혹시 틀린 게 있을 수도 있으니 양해 바란다.

이래저래 집중이 안되는 날이었다.

그런 날이 있을 수 있다고 공감한다면 이해해주라.

 

간 마와 김 조각, 참치

처음 요리니까 에피타이저겠지. 당연한 건데 그냥 말하고 싶었다.

마 사이에 숨겨진 참치를 찾아 먹는 재미가 있었다.

작게 두 세조각 썰려 들어가 있었다.

기름기가 적당했고

간이 불편하지 않아 좋았던 거 같다.

 

전복 찜과 내장 소스

와사비를 전복 위에 올리고 소스를 발라 먹었다.

새롭게 느낀 부드러움이었다.

전복 맛이 은은하게 나는 느낌이 고급스러웠다.

맛봤던 식재료인데

여기서는 다르게 느껴졌다.

 

계란찜과 토마 토 소스, 치즈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이었다.

단짠이 적절했다.

노랑, 주황, 하양의 조화가 아름답지 않은가?

 

광어, 참치, 갑오징어

광어를 요리사 님께서 시키신 대로 소금에 찍어 먹어봤는데

새로운 경험이었고 인상적이었다.

또 해보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참치는 참치라고 하기에는 정말 부드러웠다.

지금 봐도 붉은 살인데 참 신기하다.

살이 씹으면 바로 으스러져서 이빨이 좋아했다.

갑오징어는 탱글탱글한 게 식감이 참 좋았다.

위에 올라간 게 설마 캐비언가

어쩌면 의도했던 그 미묘한 맛을 나는 느끼지 못했다.

 

관자가 들어간 국물

요리사님이 매콤해요. 라고 주의를 주셨는데

첫 맛은 그 주의보다 더 매콤했다.

매콤해요 뒤에 느낌표 두개 정도는 붙어야 했다.

매콤해요!!

유자향이 나서 좋았다.

유자는 요리계의 사기템이네.

 

참치 대뱃살

대뱃살 맞겠지?

오마카세라 그런가 여태까지 먹어본 느낌이 아니었다.

미스터 초밥왕 때문에 어릴 적부터

대뱃살을 몇 번 시도한 적이 있던 나라서 잘 안다.

안에 간을 한 쌀알을 넣었는데

간도 딱 알맞았고 씹으면 참치 살과 잘 어우러져서 좋았다.

조금 긴 쌀알이 잘 느껴져서 재밌었다.

 

계란 노른자를 올린 금태

계란 노른자 만큼이나 금태 살도 부드러웠다.

은은한 고소함이 묻어났던 것 같다.

계란이란 정말 금이 아닐까.

지금 보니 빌보 배긴스의 수수께끼가 생각난다.

얼마 전에 짤로 봤거든.

빌보. 늘보. 하하하 하하....

 

러시아산 성게알과 단새우

성게알은 먹으면 머리가 저릿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은

다들 맛있는 걸 먹었을 때 막 짜증이 나는 그런 경험, 해보지 않았나?

나는 진짜 머리가 띵하고 지끈거린다.

아찔하다.

단새우와 김과의 조화도 좋았다.

성게알은 쌉쌀하고 풍미가 깊었고

단새우는 알딸딸하게 달았으며 

김은 아삭한 식감에 살짝 텁텁한 맛이 났다.

맞다. 이 부분은 솔직히 좀 오버했다. 내 맘이다.

 

줄무늬 전갱이

스시 사진을 보니 정말 예쁜데

맛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간장이 옅게 위에 칠해져 있네.

색상의 조화가 마음에 든다.

 

갑오징어와 시소(차조기)

시소의 향기가 확 올라오는 게 좋았다.

그런데 갑오징어는 질기달까 입 안에서 너무 오래 돌았다.

갑오징어는 스시를 먹을 때면 항상 먹고 싶은 그런 메뉴다.

어릴 때 일본 요리 배달시키면

스시 세트에 갑오징어가 항상 있었다.

 

은대구 구이

보통의 구이보다 한층 맛이 높았다.

진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층.

메뉴 찾아보니까 된장으로 구운 거라는데

알았으면 좀 더 음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접시가 너무 이쁨. 들고서 자세히 보았다.

 

청어 초 절임

청어 특유의 비린내가 기분 나쁘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심하지 않았고 식감이 몽글몽글 좋았다.

그런데 약간 오래 씹으면 그 비린맛이 점점 많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걸 또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황돔의 치어

한 마리에 두 조각 나온다는 스시

집중하면 특유의 맛을 느낄 수도 있을 것도 같기도 한데

나는 사실 잘 못 느꼈다.

식감은 밀도가 높은 생선살(?) 같은 느낌이었다.

 

잿방어

내가 좋아했던 스시.

살짝 아삭한 식감과 적당한 기름기 그리고 적절한 간.

먹기 좋은 수준이었다.

식감이 뚜렷한게 나는 좋다.

나는 힘들 때면 이빨이 엄청 의식되는데

이빨이 있음을 감사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식감이 좋았다.

 

러시아산 성게알

성게알 미쳐.

성게알은 그런 것 같다.

이게 비싼 메뉴인 건 아는데

이 특유의 맛이나 풍미가 깊은 것도 아는데

뭔가 먹으면 그 이상으로 아찔해지는 느낌이 있다.

이 부분은 나한테는 오버가 아니다.

 

고등어

얘도 사실 잘 기억 안 나는데

아삭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일이 종종 생각나 집중을 잘 못했다.

 

도미 뱃살, 시소, 매실

시소 향이 오는데

매실의 단 내가 은은하게 존재감을 뽐냈다.

사실 매실 맛 느끼려고 엄청 집중했다.

꼭 이걸 느껴야겠어.

이걸 느껴야 내 입맛이 발전하지.

그런 느낌이었다.

도미 뱃살이 고소하고 찰졌다. 촵촵.

 

 시로 새우

살짝 차가워서 이게 바다의 온도인가 싶었다.

따지자면 초가을 바다?

그렇다고 바다 향이 막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 내가 바다를 너무 의식했다.

그만큼 시원해서 의식했던 것 같다.

달고 먹기 좋았다.

김이 한 몫했던 것 같다.

 

미소 된장국

평소 먹던 미소 된장국과 맛이 달랐다.

조금 더 무거운 풍미가 있었는데

보통의 미소 된장국과 무엇이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익숙함이 나는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런데 이거 효과는 좋았다.

그날 바로 화장실 두 번 갔다.

 

성게알, 연어알, 참치 뱃살

섞어서 비벼 먹는데 이때부터 이미 배가 꽤 불렀다.

음... 역시 맛있는 건 섞어 먹어도 맛있구나.

전반적으로 기름진데 애들이 풍미가 강하니까 그게 각각 다 느껴졌다.

이렇게 먹는 것도 재밌구나 싶었다.

 

마끼, 아보카도, 계란, 새우 튀김, 참치 + 알파

알파는 추가된 무언가가 더 있다는 얘기다.

설명 듣는데 뭐가 많아서 귀가 자연스레 닫혔다.

딱 씹으면 아보카도나 계란이나 식감은 느껴지긴 하는데

새우 튀김이 압도적이다.

아니, 진짜 다 맛있긴 했는데

역시 튀긴 것은 범접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새우 튀김을 너무 좋아하거든.

 

장어

평소에 먹던 거랑 다른 느낌?

맛이 진한 것은 아니었는데

특유의 밸런스가 있었다.

이것도 이 곳만의 해석이 있었겠지.

나는 장어를 좋아하지만 엄청 좋아하진 않는다.

 

참치 중뱃살

우리가 배부르다고 하니까 요리사 님이 웃으면서

서비스로 주신 중뱃살.

요리사님, 나보다 젊어 보이셨는데

되게 친절하고 예의 바르셨다.

나도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자 노력했다.

기름기가 과하지 않고 적당한게

입에 삼삼하게 잘 맞았다.

부담없이 먹기에는 정말 좋았다.

 

매실

이게 매실인가? 싶었는데

입에 넣고 굴려보니 맛있었다.

그치.

이런 게 알아가는 거고

이런 게 재밌는 거다.

 

후식

과일은 맛나고 아이스크림은 아찔했다.

아이스크림의 아찔함은 차가워서.

 

그렇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진짜 요즘 빚 갚느라고 바쁜데

이런 경험은

화폐 가치에 얽매이지 않는 것 같다.

느린 미식가는

2주에 1회 연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 거부감이 들고

지금 어려운 것 같은 일이

알고 보면

지금 가능한 일이기도 한 것 같다.

어렵게 느껴져도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스스로의 용기와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많이 느낀다.

 

가격은 1인 기준, 20만 8천원.

예약비는 없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연락도 따로 오고

전날에도 문자를 또 보내주셨다.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알려준 롯데호텔 모모야마.

나를 위로해준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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