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살기/느린 미식가

느린 미식가 : 라망 시크레 [L'Amant Secret]

neulvo 2021. 5. 18. 17:24

 

 

레스케이프 호텔 26층에 위치한 라망 시크레.

아직까지도 싱글 다이닝이 익숙하지 않아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입성하였다.

 

입구에 있던 꽃나무.

화장실 다녀오면서

뒷면을 찍었는데

그 화려함이 돋보였다.

앞면엔 거울이 있어 사진 찍기에 좋다.

 

전반적인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도

진한 장미 빛깔을 띄어

화사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내가 6시에 예약을 해서인지

보통 사람들보다 더 빨리 도착하였다.

원래 왼쪽 하단의 흰 종이가

빨간색 봉투에 들어있는 건데

성급한 내가 빨간 봉투를 열고 종이를 꺼내버렸다.

그리고 사진 찍기 전에

웨이터 분께서 빨간 봉투를 가져가 버리셨다...

 

블로그를 한다는 걸 까먹지 말자...

흰색 종이를 열어보면

이렇게 코스에 대한 안내가 써져 있다.

내 이름도 적혀있다...

그래 뭐, 딱히 감출 생각은 없으니까.

 

글자가 잘 안 보일까 염려되어

메뉴들을 적어보자면

꽃놀이 -> 킹크랩과 발효한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 캐비아와 달걀(추가)

-> 아귀와 봄나물 -> 건초에 스모크 한 메추리 -> 사골을 입힌 경산 한우 안심

-> 설향 딸기와 샤르트뢰즈 -> 마카다미아 치즈케잌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나는 캐비아와 달걀을 추가했고

페어링 4잔을 추가하였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식탁의 장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장미가 예뻐 잘 찍은 것 같다. 후훗.

 

먼저 식전주이다.

아마 아뮤즈 부쉐까지 같이 마셨던 걸로 기억한다.

Sextant 2016년 산이고 자연주의 와인이다.

사진에는 약간 주황 빛깔로 잡혔는데

실제로 보면 로제 빛깔에 가깝다.

자연주의 와인이란

이산화황등의 첨가물을 넣지 않고

포도 자체의 효모균으로만 발효시킨 와인을 말한다.

 

특유의 달짝지근한 향이

화이트 와인의 와인스러운 향과

어우러져서 독특한 풍미를 안겨 주었다.

그렇다. 이제는 와인까지 신경 쓸 여유가 생겼다.

발전 중이다!

 

아뮤즈 부쉐인 꽃놀이를 먹기 전

로즈마리를 띄운 물로

손을 씻는 의식을 했다.

두근두근.

 

꽃놀이, 아뮤즈 부쉐다.

조명이 어두워서 카메라가

음식들의 빛깔을

잘 담아내지 못했다.

 

맨 위의 콘 형태로 된 것이 캐비아.

왼쪽 옆에 있는 것이 당근 타르트.

오른쪽 옆에 있는 것이 레몬 바바루아.

바로 앞에 하트 모양 그릇에 담긴 게 푸아그라 캔디이다.

각각을 간략하게 설명해보았다.

 

캐비아는 가리비 무스와 함께

얇고 바삭한 콘에 올려져 있었는데

가리비의 맛까지는 캐치할 수 없었지만

캐비아 특유의 시큼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그 맛이 가리비 무스와 부드럽게 어우러졌다.

캐비아는 이렇게 먹는 거구나 싶었다.

양파 꽃잎으로 포인트를 준 게 보기에도 좋았다.

 

당근 타르트는 가장 좋았던 게

꽃잎 부분들의 식감이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분명하게 느껴지는 게 좋았다.

맛도 당근 케잌처럼 당근 맛을 과하게 뽐내는 게 아니라

당근 안쪽의 조금 무거운 부분을 먹는 것 같은 맛이 느껴져 좋았다.

그래. 당근에 이런 맛이 있었지!라는 느낌.

 

그리고 차조기 잎을 조금씩 올린 것 같은데

그 맛까지는 지금 기억이 안 난다.

아마 맛보았을 때는 강한 인상을 받았겠지만

다른 데 더 집중을 했던 것 같다.

 

다음으로 레몬 바바루아.

바바루아는 우유, 달걀, 설탕, 향료, 젤라틴 및

거품을 낸 생크림으로 만든 디저트라고 한다.

몽실보다는 포실한 느낌.

 

생크림 덕분에 몽실몽실하다가도

쫀쫀한 느낌이 있어서

젤리 같은 느낌도 있다 싶었는데

젤라틴이 실제로 들어있었네!

그래서 포실하다고 얘기했다.

 

마지막은 푸아그라 캔디.

뭐랄까 양갱 같은 느낌이었다.

푸아그라 테린에 라즈베리, 산딸기 잼을 얹고

물로 만든 젤리로 싼 음식이다.

설명이 더 있던 것도 같은데

기억하는 것은 이 정도이다.

 

겉 부분의 달콤 시큼한 맛에

푸아그라의 녹진한 맛이 새어 나와서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었다.

 

다음 음식은 킹크랩과 발효한 화이트 아스파라거스이다.

페어링 한 와인은 Uis Blancis 16.

이 또한 자연주의 와인이다.

와인은 향이 조금 무겁고 쌉쌀한 산미가 혀에 넓게 남는 느낌이었다.

 

킹크랩은 보다시피 화이트 와인으로

조리한 후 순무로 감싸 볼 형태를 띠고 있다.

시트러스 향의 화이트 와인이라고 했던 것도 같다.

순무의 맛과 상쾌함이 마음에 들었고

킹크랩의 달짝지근함이 즐거웠다.

하지만 킹크랩의 맛이

순무의 맛을 뚫고 나올 정도로 강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래는 자몽 젤리.

보기도 좋고

먹기도 정말 즐거웠던 요리였다.

 

소스는 젖산 발효한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로 만든 소스라 했다.

오른쪽 위에 화이트 아스파라거스가 실제로 있는데

소스 자체는 크리미 하면서도 부드러웠고

맛이 튀는 느낌 없이 요리를 잘 감싸주었다.

 

오른쪽 위에 작은 접시에 담긴 건

화이트 아스파라거스와 밀크티

밀크티라고 얘기하셨는데

양이 많지는 않았고 맛도 남다르진 않았다.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맛이었다.

그보다는 화이트 아스파라거스가 꽤 맛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톡톡한 식감이 있어 좋았다.

아스파라거스 좋다.

 

다음 페어링은 Louis Roederer.

버블 감이 느껴지는 깔끔한 샴페인이었다.

후에 나오는 캐비아 요리와 무던하게 잘 어울려 추천해주셨다.

웨이터 분의 배려 덕에 즐거운 식사였다.

 

캐비아와 달걀.

라망 시크레의 시그니쳐 메뉴라고 한다.

보이는 것은 사바용 소스에 캐비아를 얹은 브리오슈가 담겨있는 모습.

캐비아는 오세트라 등급이고

브리오슈 아래에는 수란이 있다.

수란과 함께 샐러리악 그리고 차이브 오일이 들어있다.

 

그래서 섞으면 이러한 모습.

섞어먹는 거라고 말씀하셨기에

과감하게 섞어보았다.

 

섞어서 먹으니 수프같이

떠먹을 수 있었는데

뭐지? 하면서도

계속 먹다가

그릇을 싹싹 비우게 됐다.

 

캐비아는 딱 캐비아 맛.

사바용 소스와 잘 어울렸다.

샐러리악이나

아래의 차이브 오일도 그렇고

각각의 진한 맛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나름의 조화를 이루었다.

사치스러운 느낌.

한 마디로 맛의 향연!

 

녹진하면서도 깔끔한 디쉬였다.

 

그다음에 빵을 주셨는데

빵도 그렇고 버터가 맛있어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계속 먹게 되었다.

후에 대참사... ㅠ

 

아귀와 봄나물.

옆에 샴페인은 Louis Roederer.

캐비어 때 마시고 남겨서 아귀 요리와도 함께 마셨다.

아귀와 함께 브라운 버터에 굽고 훈연한 전복을 올렸다.

소스는 퓌메라는 화이트 와인 베이스에

샤프란과 아귀 뼈, 유채를 끓여 만들었다고 하셨다.

곳곳에 유채잎이 보인다.

 

그런데 소스 맛은 오! 샤프란! 이런 맛이었다.

샤프란 향이 워낙 강하기도 하고

특색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아귀는 폭신하면서도 결이 느껴지는 식감이었고

전복은 브라운 버터의 달큰함과 훈연 향이

물씬 느껴지는 맛이었다.

소스에 담겨 있다고 해도 그 맛이 어디 가지 않았다.

페어링 한 샴페인이랑 잘 어울렸던 디쉬였다.

약간의 산뜻함.

 

허허... 이번에도 여차하면 그림 그릴 뻔했다.

그런데 이건 그림으로 표현 못했을 듯.

다시는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안 된다. ㅠㅠ

 

건초에 스모크 한 메추리 요리.

그리고 페어링 한 와인은

제라드 슐러의 Pinot Noir.

제라드 슐러의 와인을 처음 마셨는데

조금 더 집중해서 마실 걸 그랬다.

묵직한 느낌의 레드 와인은 아니었다.

 

메추리 요리는 근대와 적 차조기와 함께 서빙되었다.

메추리는 탄탄하면서도 쫄깃했고

아래 간장 소스와 잘 어울렸다.

버터에 구운 근대와 적 차조기도 같이 먹기에 좋았다.

맛있게 먹었는데 앞에 빵을 너무 많이 먹어서

슬슬 배부르기 시작했다. ㅠㅠ

 

다음 메인 요리는 사골을 입힌 경산 한우 안심.

손종원 셰프님이 직접 메뉴를 서빙하고

소스를 얹어주셨다.

 

페어링 한 와인은 보르도 지역의 Saint-Émilion 2014.

묵직하면서도 확실히 맛있는 전형적인 레드와인이었다.

고기 요리와 안 어울릴 수가 없었다.

식사와 같이 곁들이기에 좋았다.

서비스로 주셨다.

 

경산 한우 안심은 저온 조리한 한우 안심 위에

우엉과 사골 크러스트를 얹었다고 하셨는데

버섯을 얇게 썬 것과 같은 식감이었다.

버섯도 올라간 건가 잘 모르겠다.

 

역시 안심은 이래야지!

싶을 정도로

매우 부드러웠고 결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먹기도 좋았고

맛도 풍미도 진득해서 쫀쫀한 느낌이 들 정도.

메인의 묵직함을 여실 없이 보여주었다.

 

설향 딸기와 샤르트뢰즈.

가운데 흰 부분은 라임 소르베.

이것도 여차하면 사진 못 찍을 뻔...

반성하고 있다.

상큼하면서도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게 너무 좋았다.

이것도 시소가 들어갔던 것도 같고

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취함과 배부름에 집중력이 많이 흐트러져 있었다.

 

서비스 케잌.

이걸 갈라 보면 안에 선물이 있다고 하셔서

엥? 무슨 말이지 하면서

 

갈라보니 하트가 짠!

재밌었다.

 

그리고 사실 이게 마지막 메뉴인 줄 알고

서둘러 나가려고 했는데

(배가 많이 불러서...)

웨이터 분이 가지 말라고 하셨다.

아직 메뉴 남아있다고...

다행이었다.

성급할 뻔했다.

 

마카다미아 치즈케잌.

아이스크림 같이 시원해서 맛있었고

옆에 사과 콤포트와 함께 곁들여 먹는 것도 좋았다.

마카다미아는 무조건 맛있다.

 

또 나가려는 나를 막으신 웨이터님...

나갈까 봐 서둘러 차나 커피를 물어보셨다.

그저 감사하다.

루이보스 차를 선택했고

보는 것처럼 라즈베리 누가, 입술 모양 초콜릿

그리고 작은 설탕 젤리들과 함께 즐겼다.

마무리까지 너무 좋았다.

 

그리고 나가는 길에 호두과자 봉지에 싸진

마들렌을 주셨다.

정말 호두과자가 아니었어...

그래도 맛있었다.

재미도 있었고.

 

라망 시크레는 정말 맛을 잘 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젊은 분위기.

매장 자체는 기품이 넘치는데

안의 사람들은 젊고 열정이 있어 보였다.

특히 중간중간 서빙해주신 요리사 분들이.

그리고 웨이터 분들이 친절하게 잘 대해주셔서 감사했다.

페어링도 좋았고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어색하지 않게 잘 할 수 있었다.

 

다이닝을 다니다 보면

가끔 웨이터 분들을 당연한 일 하는 사람처럼

대하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분들도 수고를 들이는 거고

노력하시는 거니

그분들에게 마땅한 존중을 표했으면 좋겠다.

 

아무튼, 코스의 가격은 1인, 36만 5천 원.

기본 18만 원 코스에

캐비아와 달걀 6만 5천 원

그리고 페어링 4잔, 12만 원 포함된 가격이다.

감히 평하자면,

창의적이면서도 요리에 대한 이해가 높았던 것 같다.

 

맛잘알 미슐랭 1 스타 프렌치 레스토랑 라망 시크레.

만개하기 직전의 꽃처럼 설레는

이 곳의 맛을 또 한 번 음미할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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