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그리기/느린 전시전

비눗방울과 얼룩말

neulvo 2024. 12. 23. 01:00

스케치 없이 바로 칠하고 덧칠하며 완성한 작품.

초기 아이디어는 비눗방울을 여러 개 그려보자였는데,

얼룩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보니까 그것을 캐릭터처럼 만들어서 배치하면 좋지 않을까 하였다.

원래는 조금 더 NFT 풍선이나 소파 같은 재질을 만들고자 했는데

표현이 어려웠고 덧칠하는 식으로 작업하다 보니까 수정이 어려워서 이 모습으로 정착하였다.

 

얼룩말과 비눗방울을 소재로 선택한 것은,

일단 얼룩말부터 얘기하자면,

당시 접한 정보에서 얼룩말이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속성이 마음에 들었고,

그것이 야생성과 천진성을 대변한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고,

그다음으로 비눗방울의 경우에는,

평소 우주에 관심이 많은데 우주가 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막이론과

비눗방울이 일어나고 터지는 그런 변화와 덧없음이,

우주의 무상함과 신비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얼룩말과 비눗방울을 정한 뒤로는,

배경에 형광빛 색깔들을 번갈아서 배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다음에는 비눗방울들을 즉흥적으로 배치하였다.

스케치를 하지 않았는데도 배치는 꽤 만족스러웠다.

스케치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던 작업이었다.

스케치를 하고 작업을 하는 것이 물론 퀄리티가 보장되긴 하겠지만,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는달까,

그때 그때의 고민이나 영감을 활용하긴 어려운 것 같다.

한 주 동안 텀을 두고 그리며 아이디어를 수정하고 덧붙였기 때문에

그림이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었고 다양한 요소를 지닐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스케치 없이 그림을 바로 그리는 것이 하나의 지향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하다보면 더 좋은 퀄리티의 그림을 바로 그릴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화면을 채우는 요소들 외에도 하나 더 신경 쓴 게 있다면,

처음에는 그림이 깔끔하게 떨어지도록 선 정리를 열심히 하였다면

후반부에는 오히려 선 정리에 대한 신경도 끄고,

본인이 엉성하게 하거나 수정하려 한 부분들을 고치지 않고 화면에 그대로 남겼었다.

완벽주의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수정의 흔적들이 지금의 나를 더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드러내고 싶었고,

평소 수정을 거듭하는 안 좋은 습관을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뭐, 복합적이었다.

 

아, 그리고 다양한 형태와 질감을 표현해보고 싶었는데

질감은 생각만큼 많이 챙기지 못한 것 같다.

아직까지 표현적으로 더 나아질 부분들이 많다.

최근에 그리고 유코 히구치전을 보며 다시 느꼈던 것처럼,

부족하다는 게 나쁘거나 부끄러워 할 것은 아닌 것 같다.

더 나아지려는 마음과 노력만 있다면,

부족한 게 무엇인지 아는 것은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사실 처음에 그림을 완성했을 때는 그림이 아쉽고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보이기 꺼렸었는데

그 또한 작가가 되고자 한다면 이겨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당당해지기로 했다.

컨셉을 잘 발전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아무튼 그런 고민들에 종점을 찍으면서, 마무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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